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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병영수기집-결 실 (한국군사회복지위원회)
작성자 : 김** 작성일 : 2019-12-12 조회수 : 735
결 실

00부대 병장 피진용


어느새 2000년도 몇 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쌀쌀한 날씨는 가을이 왔음을 대변하고, 나뭇잎은 노랗게, 빨갛게 아름답게도 물들어 간다.
길다고 하면 길고 짧다고 하면 짧은 나의 수백일간의 군 생활도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나고 보면 슬픈 일도 참 많지만, 이곳에서 처음 접하는 환경과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며 얻는 것들은 나에게 있어 앞으로의 길을 밝혀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군인이었던 시간에 얻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쉽지만 어려운 일 – 배려와 관심에 대해서
처음 00부대에 발을 내딛었던 2000년 0월 00일, 나는 낯선 환경과 사람들에 위축되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이 선임이고 간부님이었기에 매 순간의 언행은 여러 번의 생각을 거쳐야 했다.
그렇게 주변과는 상관없이 내 행동에만 집중하던 시간들은 곧 이기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나만 혼나지 않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과 아직 모든 것이 미숙할 때 후임병에 만족하고 나태해진 모습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내게 맡겨진 기본적인 임무에도 충실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사실상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중대에서 행정병을 맏고 있었지만 일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후임이 들어왔다고 해도 내가 중대의 일원으로 서 해야 할 일이 있음에도 나는 모든 것을 후임에게 미뤘다.
그 결과로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었다.
훼손된 이미지는 내가 선임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당연한 결과였음에도 나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임과 진솔한 대화를 했을 때, 그제야 나는 나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사람을 나쁘게 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는 누군가에게 정직하고 살갑게 대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했고,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기에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실망했음을 알게 되었다.
원인을 알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알았으니 그 다음은 쉬웠다.
나는 잃어버린 신뢰를 찾기 위해 남들보다 한 발 앞서서 모든 일에 임했고,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일주일, 한 달을 보내고 시간이 지나가며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를 향한 시선은 점차 회복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부대의 그 누구와도 갈등이 일으키지 않고 원만하게 지내고 있다.
전역한 선임들과도 꾸준한 연락을 하고 있다.
부대에 와서 배운 매우 소중하고 아픈 기억 중 하나였다.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부대에서 배운 나는 앞으로의 사회에서도 새로운 관계를 기분 좋게 시작하는 법을 배웠다.

꿈을 찾아서, 미래를 찾아서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나는 전기전자공학을 공부하는 공학도였다.
그러나 공부를 시작하고 1년이 지났을 때, 나는 공학과 잘 맞지 않음을 깨달았다.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과정의 교육 커리큘럼은 ‘적성과 취업에 맞추어져 있다.
자신의 적성을 정하여 대학에 입학하고, 해당과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교육받음으로 대학생들은 사회에서 자신의 적성과 맞는 직업으로 취업하게 된다.
그렇기에 대학의 교육은 초중고 때와는 다르게 자신의 적성 위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대학공부는 학생 본인에게 있어서도 흥미와 재미를 준다.
그러나 대학에서 전기전자공학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나는 의구심을 품었다.
과연 내가 이 분야에 흥미를 느끼고 있는지, 내가 과연 이 분야로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군대에 와서도 같은 고민은 계속되었다.
공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평소에도 책을 좋아했던 나는 군대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자기계발에 사용할 수 있음에 놀라고 있었다.
곧 나는 독서카페에서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읽기 시작했고, 사회에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에세이, 시나 자기계발서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기 시작했다.
진로나 자아에 대해서 고민하는 서적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선택한 공학이라는 길이 내 적성과 맞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찾아보며 다시 나의 진로를 탐색했다.
그 결과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것에 많은 흥미를 느꼈고, 그런 쪽에 적성이 있었는지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 부담감이 없었으며, 글을 작성하여 포상휴가도 획득하는 등의 성과를 보였다.
글을 쓸수록 내가 미래에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자라나기 시작했고, 진로도 그 쪽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우연히도 대대에 자체적으로 진로에 관한 서적을 읽고 서평을 작성하는 공모전이 열렸다.
나는 이 공모전에 참여하여 책의 내용과 나 자신의 적성을 적절히 비교한 글을 작성했고, 공모전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분야에 재능이 있었으며 재미 또한 느꼈던 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었고, 결국 나는 나의 진로를 글과 관련된 방향으로 잡았다.
군대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나 자신의 미래에게 투자할 수 있다. 하루에 못해도 2시간 최대로 노력하면 하루에 5시간 이상을 꾸준히 자기계발에 힘쓸 수 있다.
나는 이 시간을 책과 함께하며 나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만일 부대에서 자신에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은 무작정 놀기보다는 자신의 꿈과 관련된 일을 찾아보기 바란다.
꿈이 확고한 사람은 그에 대한 노력을,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본인을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슬픔을 기억하는 방법
누구나 가슴속에 한두 가지 정도는 슬픔을 담고 산다.
평소엔 별 생각이 없어 보이고, 언제나 밝아 보이던 사람도 그런 슬픔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런 슬픔을 군대에서 하나 더 얻었다.
작년 9월, 내 동기가 부대에서 사고를 쳤다
그는 말이 적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처음 부대에 도착한 날부터 친해지는 데에만 2주간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친해지고 나니 속도 깊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티 없는 순수함을 가진 아주 좋은 친구였다.
평소에 그 어떤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았던 친구라서 더욱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동안 슬픔에 모든 것들이 싫었다.
사람 한명만 사라진, 그 외의 모든 것이 다른 것이 없었던 이곳이다.
5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함께 해온 사람이 사라진 곳을 혼자서 계속 살아간다는 것은 내게는 고문과 다름 바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그런 일이 있고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곧 사회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으며, 새로운 인연을 많이 만났으며, 나 자신을 더 알아가는 시간도 거쳤다.
나는 슬픔을 기억하는 법을 배웠다.
슬프다고 마음 한구석에 밀어 넣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나중에 기억을 바라보며 슬픔 속에서도 기쁜 일이 보인다는 것도, 과거의 슬픔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현재의 기쁨을 만끽하는 법도 배웠다.
지금도 가끔 먼저 떠난 그가 생각이 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슬픔에 빠져 우울하기에 내게 남은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나는 멈추지 않고 앞을 향해 달려가기로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20대의 청년들은 군대를 인생에서 가장 힘든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군생활의 끝이 보이는 나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단순히 힘들기만 한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군대에서는 20대의 청년들에게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들을 배울 수 있는 학교와는 다른 제2의 배움터이자, 사회에 나가기에 앞서 더 많은 사람을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장이다.
나는 스물 한 살에 육군에 입대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나에게 사람의 성장을 가르쳐준 군대라는 조직에 감사한다.


자료 제공 : 한국군사회복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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