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조선조 양대 학파 중 하나인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총수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창업(創業)보다 수성(守成)이 훨씬 어렵다고 했다. 수성이 창업보다 어렵기 때문에 끝없는 경장이 필요하다며 경장론(更張論)을 주장했다. 그가 말년에 쓴 동호문답(東湖問答)과 시무론(時務論)에서는 이 대경장론을 시종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조선의 5백년 역사 가운데 일관되게 개혁의 기치를 들었던 사람이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이다. 조광조는 29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4년 뒤 33세에 알성급제(謁聖及第) 장원을 했다. 그는 과거에 급제한 후 승승장구해서 30대 중반에 대사헌(大司憲)에 올라가고 대사헌 벼슬에 있으면서 왕의 심기를 결정적으로 건드린다. 왕의 사랑을 극진히 받고 있던 후궁의 친오빠를 한성판윤(漢城判尹), 지금의 서울시장자리에서 한직으로 내모는 인사조치를 한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피의 숙청을 불러일으킨 사화의 단초가 된다. 정암 조광조가 개혁의 칼날을 들자 중종반정에 가담했던 훈구세력들은 정암을 거세하기 위해 크나큰 음모를 꾸미는데 그 음모가 유명한 주초위왕(走肖爲王 : 走자와 肖자를 합치면 走肖자가 되며, 走肖씨가 왕이 된다는 뜻)이다. 훈구세력은 후궁이 살고 있던 집 뒷뜰의 버드나무 잎사귀에 주초위왕이라는 글을 벌꿀로 새긴다. 꿀이 묻어있는 자리에 벌레들이 쏠게되여 잎사귀에 주초위왕이라는 네 글자가 써진다. 왕이 후궁의 처소에 들어 울고 있는 후궁에게 왜 울고 있는지 묻는다. "소첩은 어찌 하오리까. 정암 조광조가 제 오라비를 한성판윤에서 내모는 것은 필시 그 이유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어떤 이유가 있더란 말이냐." "역모를 꾀하는 것 같사옵니다."
그래서 죄 없는 정암은 훈구세력의 음모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귀양을 가 있던 정암은 훈구세력이 주청하여 사약이 내려지니 그때 정암의 나이 38세였다. 정암 조광조가 내 놓았던 왕도정치와 도학정치의 개혁이 조선 중기에 이 땅에 정착되었다면 그간 한국의 민주화 기간 동안 고귀한 청년들의 죽음과 피가 없었더라도 한국의 민주정치는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개혁은 뿌리내리지 못했다.

개혁이 뿌리내리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 나머지 율곡 이이 선생과 성호사설(星湖僿設)을 쓴 이익은 왜 이토록 훌륭한 제도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고 왕도정치가 실패했는지를 놓고 짤막한 글을 썼다. 논의태예 작사무점(論義太銳 作事無漸), 즉 정암 조광조가 내놓은 왕도정치는 위대한 정치학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정치학설이 왜 뿌리를 내리지 못했는가? 일을 제대로 성사시키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그것은 점진적(漸進的)으로 했을 때 성사가 되는데, 점진적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 정암 조광조의 정치학설은 대단히 위대한 학설이었지만 점진적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두 사람은 방법론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그변(其變)이 유점(有漸)이요, 그진(其進)이 유계(有階)라.' 기존에 있던 상황인 절대군주 체제에서 어떤 변화를 주려고 하면, 즉 민주정치로의 변화를 주려면 점진적으로 변화를 주어야 한다. 또한, 한꺼번에 되는 것이 아니라 step by step으로 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