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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바람이 들려주는 아빠 목소리

시원한 바람이 내 머릿결을 어루만진다. 아빠와 손잡고 걸으며 멋진 3학년 생활 보내라고 아빠가 걸어왔던 길을 이야기를 해 주셨던 그 날도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 우리 아빠는 해양 경찰 특공대이시기 때문에 아빠 얼굴을 보지 못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아빠가 정말 보고 싶다. 하지만 오늘 이 바람이 내 마음을 어루만지듯 아빠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것만 같다.

 

 

“진이야, 아빠도 진이 정말 보고싶어. 사랑해 우리 진이.” 라고 말이다. 아빠가 보고 싶다고 엄마한테 투정만 부리고 해야 할 일도 열심히 하지 않고 빈둥거리며 지내는 내가 부끄러 웠다. 시원한 바람이 불던 날, 아빠가 들려주셨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의 어렸을 적 꿈은 대통령 경호관이셨다. 아빠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학교에 다니면서도 늦은 밤 시간 까지 열심히 운동을 하셨다. 전국에서 열리는 각종 합기도, 격투기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꿈과 한 발 더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던 중 아빠께 큰 시련이 닥쳤다고 했다. 대학교 진학을 코앞에 두고 출전했던 마지막 경기에서 아빠는 심한 다리 부상을 당했고 열심히 준비했던 대학교 실기 시험을 치를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때 아빠는 큰 절망감과 함께 좌절했다고 하셨다.

“이제까지 흘렸던 피와 땀이 다 헛수고가 된 것 같아 너무 화가 났어.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어.” 라며 아빠는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셨다. 만약 내가 아빠의 입장이었으면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매일 울기만 하고 내 꿈을 포기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아빠는 아빠가 원했던 길은 아니었지만, 아빠의 또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했다.

 

아빠께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빠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이렇게 계속 화만 내고 좌절만 하고 있다면 내 인생은 결코 빛을 볼 수 없을 거 란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결심했지. 조금 돌아가는 길이 될지 모르지만 한번 부딪혀 보자고.”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그만 일에도 힘들어하고 짜증을 내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아빠의 딸로서 지금 까지 혼나지 않기 위해 숙제를 하고, 빨리 놀기 위해 대충 공부를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힘들다고 포기하지 않고 아빠처럼 당당하게 맞서 보겠다고 말이다.

우리 아빠는 부상으로 처음 계획했던 대학은 아니었지만, 경호학과가 있는 다른 대학교에 실기 시험 없이 그동안 수상 성적으로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는 대학교를 진학하고 사설 경호업체에 입사해 2년 동안 경호 일을 하셨다.

경호 일을 하면서도 아빠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을 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우리 아빠는 다른 사람들은 한 번도 힘들다는 군대를 2번이나 가셨다. 처음엔 해병 특수 수색대에, 두 번째는 특전사로 말이다. 예전에 아빠가 군대에 있을 때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군대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추운 겨울 눈 위에서 스키를 타고 총을 쏘기도 했고, 얼음을 깨고 그 속에 들어가기도 했어. 헬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기도 했었고, 400km를 걷는 천 리 행군도 했었단다.” 난 상상하기도 힘든 이야기이다. 텔레비전으로만 봤던 나라를 지키는 군인 아저씨는 무뚝뚝하고 무서워 보이는 데, 우리 아빠는 가족에게 언제나 장난치신다.

누구보다 부드러운 아빠가 우리나라를 지키는 군인 아저씨 였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천 리 행군이 끝난 뒤, 아빠 발은 물집에 피투성이였다고 했다. 그 힘든 훈련을 다 참아내고, 일등으로 수료한 아빠는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아빠께 발 아프지 않았었느냐고 물어보니 아빠는 “아팠지. 하지만 아픈 것보다 ‘해냈다’ ‘나 자신을 이겨냈다’는 마음에 뿌듯했어.” 라고 했다.

나는 조금만 다쳐도 ‘엉- 엉-’ 우는데, 우리 아빠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아빠 이야기를 들으며 난 우리 아빠가 더 자랑스러웠다.

 

아빠는 군대를 제대하시고도 직업 군인으로 6년 동안 레바논 UN 평화유지군과 아프가니스탄 재건 지원단으로 해외 파병을 2번이나 다녀오셨다. 파병을 가기 전에는 교육을 받아야 해서 집에 못 오신 날이 많았다. 동생 생일 때는 우리 가족이 아빠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차 안에서 생일 파티를 한 적도 있었다.

 

 

어렸을 적에는 아빠가 집에 계시지 않아서 아빠를 원망한 적이 많았다. 아빠가 내 생일에도 어린이날에도 함께 놀아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많이 부렸었다. 하지만 바람이 불던 날, 아빠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동안 아빠께 섭섭했던 마음도 다 날아가 벼렸다. 오히려 그 바람이 우리 아빠가 얼마나 훌륭한지, 얼마나 나라를 사랑하는지 전해 주었다. 나는 엄마와 동생들과 그래도 함께 지내는데 아빠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하니 아빠께 투정만 부렸던 내가 죄송스러웠다. 우리 아빠는 집에 오면 엄청 피곤하실 텐데도 우리와 놀아주기도 하고 같이 악기 연주도 하고, 나무도 패고, 이웃집 삼촌들과 고기도 구워 먹는다. 우리 아빠는 우리 가족이 비타민이라고 한다.

 

나는 새콤달콤 빨간 비타민, 준환이는 끈적끈적 초록 비타민, 상혁이는 말 듣지 않는 오톨도톨 콩사탕, 어진이는 알록달록 무지개 비타민, 우리 엄마는 아빠한테 산삼이라고 하시며 아빠는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를 보면 힘이 난다고 하신다. 나는 이제 아빠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힘든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에게 힘을 주는 아빠가 고맙기만 하다. 나는 아빠가 다른 아빠들처럼 매일 같이 있지 않아도 우리 아빠가 좋다.

 

나도 아빠가 꿈을 이루기 위해 힘든 일은 잘 견뎌낸 것처럼 ‘스튜어디스’라는 내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할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동생도 잘 돌보는 것이 아빠가 나라를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신없이 불어대는 바람이 좋다. 바람이 아빠의 마음을 전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바람이 진도에 계신 아빠께 보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빠가 자랑스럽다는 것을…. “아빠 힘내세요. 사랑해요.”라는 내 말을 전해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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