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이다.
단풍으로 물들어 있는 산하는 페르시아 카펫처럼 화려하면서도 은밀함이
숨어 있다. 아름다운 산하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평일에 갈 수
있는 여건이 안되어 주말에 가기로 했지만 가을 주말마다 우리를 찾아오는
것이 있었다. 청첩장이었다.
가을은 결혼의 계절이라서 그런지 청첩장이 참 많이 왔다. 늦은 결혼을
하는 친구, 친척, 몇 번 본 기억 밖에 없는데 청첩장을 보내는 사람
등등 꼭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에서부터 축하의 인사만 전해도 되는 결혼식들이
가을 주말을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루한 일상에서 새로운 활력소를
찾기 위해 주말 여행을 계획했던 것을 취소해야만 했다. 늦게 결혼하는
친구가 부탁을 했던 것이다. 부케 받을 사람이 너 밖에 없으니 꼭 참석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이었다. 부케를 받고 6개월 안에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주 늦어진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나는 6개월 안으로 결혼할 자신이
없으니 친구에게 부케 받을 사람을 구해보라고 했지만 친구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 결혼을 생각하겠냐면서 막무가내로 우겨댔다. 결국 나는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주말을 반납하기로 한 것이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다.
 세상의
어떠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 결혼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일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결혼식을 보면서 에덴 동산으로 날아가는 연인들을
그린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 신부>라는 그림이 생각난다.
“...나는 화가가 되고 싶어요.
이제 다 결정난 일이에요. 더 이상 나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지우려 하지
마세요. 이미 충분히 겪었으니까요... 내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화가가 되고 싶어요... 그럼 행복할 거예요.”
어린 시절 가난했지만 화가로서 꿈을 버리지 않았던 샤갈은 1887년
러시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유태인이지만 열정적으로 가족을 보살핀 어머니가
있었기에 샤갈은 화가로서의 재능을 꽃 피울 수 있었다. 평범한 삶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다. 가난했지만 따뜻함을 잃지 않았던 그의 가족들은
샤갈의 그림세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방면에 재능이 많았던
샤갈은 그림을 공부하지만 늘 궁핍했다. 교육도 별로 받지 못한 소외된
삶. 그러나 그는 독특한 개성과 기질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거기에 만족할 순 없었다. 그의 독자적인 시각은
현실과 전설적인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늘 양면성을 지닌
모순되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작업을 하게 된다. 이러한 작업은
자신의 문화 세계와 원초적인 종교 세계를 초월하는데 그것은 그의 주요
욕구 가운데 하나이다.
"파리에서 나는 모든
것, 특히 직업으로서의 예술을 발견한 것 같다. 나는 미술관과 살롱전,
어디에서나 나릉 알려야 했다...어떤 미술학교도 내가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와 그곳의 전시작품들, 파리의 미술관에서 흥미롭게 발견한 것들을
가르쳐주지 못할 것이다"
샤갈은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떠나게 된다. 가난과 외로움 밖에
없었던 그는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찾아다니면서 탐구하기 시작한다. 지루한
생활에서 가장 설레고 기다려지는 시간들이었다. 그는 놀라운 속도로 이전의
화풍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색채를 확고히 하기 시작한다.
그즈음 새로운 운명이 다가왔다. 환경도 성격도 다른 벨라와의 운명적인 사랑, 긴 기다림 뒤에 얻은 사랑이기에
가슴은 환희로 타올랐다. 벨라와의 결혼을 위해 샤갈은 다시 러시아로 돌아오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벨라가
미국으로 망명한 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비극적인 종말로 끝났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샤갈의 서정적인
그림으로 남아 있다.
"나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예술적인 이유로 러시아를 떠났다"
전쟁으로 불행한 사태를 예감한 샤갈은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는 파리로 망명한다. 파리에서 그는 여행을
통해 오랫동안 기다려온 평화로움에 빠져든다. 평화로운 느낌은 내면적인 혼란 상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시선으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스스럼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입밖에
낼 떄,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
그것이 나의 기교이고 나의 종교이다. 수세기 전의 오랜 옛날부터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새롭고도 오래된 종교이다."
극렬한 전쟁으로 인해 샤갈은 행복했던 파리의 생활을 뒤로하고 미국 뉴욕에
자신의 그림을 풀어놓는다. 미국으로 망명을 한 것이다. 그의 예술세계의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던 아내 벨라를 잃고 절망에 빠진 샤갈은 한동안
붓을 들지 못하지만 그는 새로운 창작력을 과시하며 판화 작업에 몰두한다.
그의 상처는 그림으로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생활은 샤갈에게는
부담스러웠다. 프랑스에 대해 변함 없는 애정이 그를 미국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그에게 파리는 곧 희망을 의미하기에 샤갈은 두 번의 망명을 걸쳐 파리로 돌아온다.
춥고 힘든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는 나무처럼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샤갈은
도자기와 조각에 손을 댄다. 다양한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가는
샤갈에게 성서는 가장 큰 힘이 된다.
“인생은 어쩔 수 없이 유한한 것이므로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사랑과 희망의 색깔로 인생을 채색해
나가야 한다. 이런 사랑 안에 삶의 사회적 논리와 모든 종교의 핵심 내용이 들어 있다. 나에게 예술과 인생의
완벽함은 성서에서 유래한다.”
그의 지적인 탐구도 끝이 났다. 1985년 98년에 걸친 그의 인생이 평화롭게 마감한 것이다.
|
살며생각하며 
여행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