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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다부동, 팔공산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웠지만 총상을 입어 명예제대 하였고, 이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고통 속에서도 국가를 위해 충성하라는 1대 故 김을규님의 유언은 자손들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아버지의 명예를 위해, 병역명문가 선정과 함께 65년 만에 참전유공자를 신청한 김상진 가문 [김상진 가문, 2대 김상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리고 우리 자손들도 새로운 영광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1대 故 김을규님의 가르침은 2대, 3대를 넘어 후손들에게까지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 사명감으로 하나된 김상진 가문입니다. [대통령상 여형구 가문]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게 된 여형구 가문은, 3대에 걸쳐 병역의무자 16명 모두가 총 429개월 동안 성실히 병역을 이행하였습니다. 3대가 모여, 아버지의 얘기로 가득한 여형구 가문. 1대 故 여운홍님은 전라남도 보성역에서 역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남쪽으로 피신하고 있었습니다. 보성도 피난행렬로 아수라장이었습니다. 북한군의 포격에 피난 열차 바퀴가 파손되어, 수천 명의 피난민이 죽임을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1대 故 여운홍님은 언제 포탄이 쏟아질지 모르는 위기속에서 파손된 열차의 바퀴를 수리하기 시작했고, 북한군의 추가 포격 직전에 무사히 열차를 출발시킬 수 있었습니다. [여형구 가문, 2대 여진구] "‘최선을 다하라’는 좌우명을 삼고 계시는 분이었기 때문에 그런 마음가짐에서 내가 죽더라도 한 사람을 더 살려야 한다는 그런 신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여형구 가문, 2대 여형구] "(북한군은) 그 당시에 공무원이나 역무원을 했던 사람들에게 체포령이 내렸던 것 같아요." 비군인 신분으로 6.25전쟁에 참전하여 휴전까지 물러섬이 없는 용맹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뜻을 따라 7명의 아들과 8명의 손자 모두 예외 없이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습니다.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전쟁의 숨은 영웅! 그런 아버지를 따라 대를 이어가는애국심이 빛나는 영예로운 여형구 가문입니다. <나의 아버지, 병역명문가의 못다한 이야기> [김천중 가문] 박동순(86세) “(6.25전쟁)그때는 군대를 가면 살아서 올 지를 몰랐어. 죽어서 올 줄 알았지. 그런데 7년 만에 제대를 해서 왔네. 우리 영감이, 애들 아부지가.” [이종민 가문] 2대 이희재님 “옛날에 다 힘들게 살았지만은, 자식들 위해서 열심히 사셨고... 열심히 사시면서 자식을 위해 희생을 많이 하신 거 같아요..“ [정석훈 가문] 2대 정석훈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심은 잊어서도 안되고..” [김상진 가문] 2대 김진복 “부산에 올라오니까 어머니 혼자 계시더라고요. 집에... 빈소를 소 마구간에 마련해 놨더라고요.“ [김상진 가문] 2대 김진용 “솔직히 부대 복귀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훈련소 생활도 힘들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에 ‘내가 군에 가서 뭐 하겠나’ 싶은 생각도 들고 큰 형님이랑 작은 형님께서 “아버지의 유언을 받들어서라도 가야된다.” “군 생활을 열심히 해야 된다.” 그 말 한마디로 장례를 다 치르고 복귀했어요.“ [여형구 가문] 3대 여인범 “아버지 보면서 배웠던 것들 하나하나 다 실현해 나가면서 저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가장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종돈 가문] 3대 이현우 “할아버지와 아버님을 본받아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그런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상진 가문] 3대 김현연 “아버지가 묵묵하게 걸어왔던 삶을 본받아서 저도 제 가정을 만들며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형구 가문] 2대 여형구님 “저와 형제들은 아버지 살아계실 때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습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멀리 계시지만 행복하게 잘 계십시오.“ 전쟁의 포화속에서 물러서지 않으셨던, 나라와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그런 아버지를 따르는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병역명문가입니다. [정석훈 가문] 1대 정동식(91세) “우리 가족들, 손자들, 며느리들, 모두 사랑한다.“ (엔딩 타이틀) 대한민국이 사랑한 아버지, 병역명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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