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복무중 국내에서 이십 개월을 근무하다 스스로 파월(派越)을 지원하여
월남으로 갔다. 당시 나는 특과학교에서 기간병(基幹兵)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말 그대로 특과였다. 따라서 매주 외출 외박이 자유로웠는가 하면 휴가도 자유롭게
얻을 수가 있었다. 거기다가 근무도 편했다. 그런데도 나는 마치 무슨 귀신에게
홀린 듯이 파월지원서에 도장을 찍어버린 것이다.
막상 지원서를 내고 나니 잠이 오지 않았다. 미구에 닥쳐올 내 운명에 대하여,
심려를 끼쳐드린 가족들에 대하여, 그리고 한 잎 낙엽처럼 떨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내 청춘에 대하여 끝없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어쩔 것이냐, 한번 던져진
주사위를 다시 던질 수는 없지 않느냐, 신은 분명히 내 편에 서서 나의 손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으로 장도(壯途)에 올랐다.
"저 곳이 그 악명 높은 혼바산이다. 불란서군 일 개 중대가 월맹군과의
전투에서 산화함으로써 최악의 격전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들의 임무는 그 곳에
잔재해 있는 첩자들과 VC들을 모조리 소탕하는 일이다"
현지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일 개월이 멀다하고 이러한 유형(類型)의 작전명령이
떨어졌지만 우리들 중 누구도 열성적으로 동조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야말로 그때 우리들은 철저한 전쟁의 도급업자(?)들이었던 것이다.
사단사령부로부터 그러한 작전명령이 떨어지면 우리들은 곧바로 현지로 향했다.
주간에 접근하는 수도 있었지만 야간에 이동하는 수가 더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중형 병기들은 육로를 이용했고 병력들의 현지 수송은 미군 헬기로
공수되었다.
월남땅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산은 대개 밋밋하고 잡목숲을 이루고 있었다.
평야지역엔 늪지대와 쓸모없는 땅들이 허다이 버려져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폭염과 폭우와 그 밖에 이름모를 곤충들의 행패에 시달리면서도
작전명령에 따라 때로는 포복을 때로는 도강(渡江)을 서슴치 않았다.
나는 현지에서 십육개월을 근무하고 돌아와 동기들 보다도 사 개월이나 늦은
전역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를 추억하게 되는 것은 왜 나는 그처럼
무모한 짓을 했을까 하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결단과 과정을
통해서 무엇을 얻었는가 하는 점 때문이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원리대로 얻어진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이다.
아무튼 나는 그 덕분에 삼십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무용담을 늘어놓을 수가 있게 되었으며, 그것이 힘이 되어 오늘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고 자부할 수가 있다.
나는 병역의 의무를 하지 않은 사람은 서장이 없는 연극과 같아서 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혈기 왕성하고 방장한
시절의 추억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더러는 그렇게 생각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인지 병역비리에
관한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그 숫법은 돈을 받고 특정인에 대하여 불합격
판정을 해주기도 하고 입대를 하였더라도 특과병으로 빼주기, 복무중이라도
억지구실을 만들어 의가사나 의병제대를 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리는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문제는 그러한
비리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은 매우 크다는 것이다. 만일 그런
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면 누가 법을 지키고 국방의 의무를 충실히
하겠는가. 선량한 사람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나만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의가사제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어쩌면 나는 의가사제대자들로부터
선의의 피해를 받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신병교육을 마치고
같은 부대로 배속받은 동기생이 세 사람이 있었다. 이들과는 같은 날
입대하여 한 내무반에서 생활을 하면서 교육을 받다가 같은 부대로 배속이
된 것이다. 그러니 어찌 가깝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들과는 시간만
나면 같이 붙어 다녔다. 일과시간은 물론 식사시간, 취침시간, 토요일이
되면 외출도 함께했다. 그런데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은 자대생활 일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의가사제대를 해 버렸다. 두 사람 다 2대 독자여서
의가사제대 신청을 해 놓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부모를 잃고 형제를 잃었어도 그
만큼 서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대를 떠나던 날 내가 너무나 서운해
하자 그들이 먼저 나의 손을 잡으면서 눈물을 글썽였다.
"용아, 그동안 즐거웠다. 우리 사회에서 다시 만나자"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고
"가면 편지할께. 서울과 가까우니까 외출나오면 꼭 우리 집에
놀러와!"
다른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울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나는 그들처럼 독자(獨子)가 되지 못한 것이 서운했고 나에게 특혜를
줄 만한 배경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앞에서 나는 나의 파월동기(派越動機)를 확실히 밝히지 않았는데 따지고
보면 그러한 막막함의 후유증을 파월쪽으로 달래보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두가 아득한 세월 저편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지금에 와 생각하면
나의 생각이 얼마나 옹졸한 것이었던가를 깨닫게 된다. 우연한 결과란
있을 수 없듯이 그처럼 쓰라린 과거가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건재할 수
있었던게 아닌가.
내가 만일 병역비리를 자처한 사람들처럼 군복무를 회피했거나 도중에서
의가사제대를 해 버렸다면 훗날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내 인생의
서장이 텅비어 있으니 회상하고 들려줄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누구보다도 많은 무용담이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것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삶의 보고(寶庫)요 자산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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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무청장님 인사말씀
젊음, 나라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