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다른 어느 곳도 아닌 부산지방병무청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예전에 친구따라 병무청에 한번 왔을때, 무슨 관공서가 이렇게 작고 낡았냐며 투덜거렸던 그 건물 그대로였건만, 첫 출근하던 날, 그날 아침의 부산병무청은 내게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였다. 그날 정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결심을 했었다. 공무원 시험을 치려고 마음 먹었을 때, 합격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병무청 발령을 받았을 때에도 했었던 결심이었지만, 그날, 첫 출근 날, 나는 어느 때보다도 굳게 결심을 했었다.
“꽤 괜찮은 공무원이 되자!”
이후의 일들은 순조롭기만 했다. 소집과 민원실로 발령이 난 나는 민원서류 접수를 거쳐 국외여행허가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전에 증권회사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민원 창구가 크게 어색하지도 않았고, 민원인을 대하는 게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무엇보다도, 스물 여섯이면 어린 나이가 아님에도, 우리청에서는 나이로나 기수로나 막내였기 때문에 모든 직원분들이 작은 실수쯤은 귀엽게 봐 주시고 항상 자상하게 가르쳐 주셔서 하루하루가 편안하고 즐겁기만 했다. 더구나 의사표현이 적극적인 몇몇 민원인의 그린카드로 인해 지방청장 표창까지 받았으니, 나는 내 스스로가 처음 가졌던 그 마음에 충실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데 그 자만이 지나쳤던 것이었을까? 어느날 아침 민원실에서 함께 근무하던 선배 언니가 “한번 읽어봐라” 하며 건네주신 종이를 받아들고 나는 얼굴이 빨개져버렸다. ‘강수봉씨,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고압적인 것 같습니다 ...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 아닌가요? ... 병무청이라 그런가요?’라는 것이었다. 순간 급소를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다. 성명과 주민번호를 정확하게 기재하고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써 놓은 것으로 보아, 단지 기분이 상해 즉흥적으로 쓴 것 같지는 않았다.
한참을 멍하게 있던 나는 그제서야 차분하게 내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던 게 사실인지도 몰랐다. 항상 웃는 얼굴로 민원인을 대해야지 다짐했었건만, 어느새 내 얼굴은 무표정을 거쳐 반쯤 짜증난 얼굴이 되어 있기 일쑤였다. 또 상담전화나 내방 민원인이 조금만 많아도 마음이 급한 나머지 친절은 커녕,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듣기 힘들다는 불만을 듣는 일도 잦아지고 있었다. 애초에 내가 품었던 ‘꽤 괜찮은’ 공무원상(象)에서 나는 몹시도 멀어져 있었던 것이다. 초심(初心)을 잃어가는 내 모습이 그 짧은 몇마디에 투영돼 있는 것 같아 부끄럽고 한편으론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처음 그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
나는 첫 출근날처럼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그날 그 결심 이후로 나는 종종 내가 처음에서 멀어져 있지는 않은 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곤 한다. 가끔은 처음과 그리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아 안심하며 웃을 때가 있지만, 또 어떤 때는 처음에서 너무 멀리 와 있는 것 같아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글쎄...오늘은...? 다행히도 오늘은 거울속의 내가 방긋 웃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