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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신체검사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간혹 징병검사장에서 수검자나 보호자들이 종사원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몇 년전 병원에서 일어난 일이 생각나곤
한다. I 복도에 불을 켜고 의국으로 향한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오늘은 비과(鼻科)에서 두경부파트로 옮긴 첫날이다. 하얀 백열등 아래 열심히 복사를 하고 있는데 역시 또 “삐리릭 삐리릭” 호출기가 울렸다. 응급실에 전화를 해보니 편도선 절제술을 받은 환자가 출혈을 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CBC(complete blood count)와 IV라인을 잡아놓으라고 해놓고 응급실로 달렸다. 30대 후반의 젊은 남자이고, 교수님과 안면이 있는 분이었다. 헤모글로빈 수치는 7.0. 환자의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검사를 해보니 출혈은 멈춘 것 같았다.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안심시키려 출혈에 대해 설명을 해 주었다. 옆에 와 있던 그의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내 얼굴만 바라본다. 하필이면 첫날부터 이게 뭐람, 내가 수술한 환자도 아닌데... 차트를 보니 집도의 칸에 교수님이름과 제1조수에 바로 2년차 선생님 이름이 있는 것이었다. 바로 연락을 드렸다. 30분 후, 2년차 선생님이 오셔서 입원을 지시한 후 응급실을 떠났다. 창밖으로 날이밝아오고 있었다. II 입원 3일후, 더 이상의 출혈은 없고, 식사도 잘해 퇴원을 시켜드렸다. 오후 회진을 돌고 나서 9층 회의실로 중국음식을 시켰다. 점심도 먹지 못한터라 무척 허기진 상태였다. 자장면을 먹으려 하는 순간 응급실에 환자가 왔다는 연락이 왔다. 편도선 절제술 후 출혈이 있는 환자였다. 당직인 나는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다. 어디서 많이 본 환자가 입안에 손수건을 문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손수건에는 피가 흥건히 묻어 있었고 환자 보호자인 그의 아내는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다가 오고 있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피할 수 있을까’... 출혈은 계속 되고 있었다. 일단 전기 소작술로 출혈부위를 지혈시키기로 하고 환자가 물고 있던 손수건을 입에서 떼어냈다. 그리고 피를 흡입 해가며 보비(전기소작기)로 지혈시키기 시작했다. 보비는 통증이 큰 치료방법이다. 환자는 피를 토해냈다. 2년차 선생님의 하얀 가운을 빨갛게 물들이고 내 얼굴에도 얼룩을 만들어냈다. 30분, 1시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순간 아까 시켜 놓은 자장면이 생각났다. 지혈은 쉽사리 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이 때 2년차 동료선생님은 수술방에서 지혈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유했고 우리는 수술을 위한 기본검사를 실시한 후 바로 수술실로 내려갔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수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배가 너무 고파 참을 수가 없었다. 인턴선생님에게 몰래 빵 좀 사다달라고 부탁을 하고 스크럽을 섰다. 다행히 지혈이 잘되어 수술은 30분만에 끝났다. 환자를 회복실로 보내고 나서 수술방에서 그대로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힘든 하루가 지나갔다. 입원실로 올라온 환자를 9층 병동 식구들이 구면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환자는 부글거리는 화를 꾹 참고 있는 것 같았다. 난 환자의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며 성심 성의껏 설명해주고 시간이 나는대로 병실에 들러 안부를 묻곤 했다. 이번에는 퇴원하는데 5일이 걸렸다. “다음에는 좋은 일로 만났으면 합니다.”라고 말한 후 어느 덧 1주일이 흘렀다. III 새벽5시, 간신히 눈을 감았다. “삐리릭, 삐리릭” 호출기는 여느때나 다름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응급실이었다. 눈을 감은 채 “이비인후과인데요, 호출 하신분요” “선생님 저번에 오셨던 분요”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요?” “편도선 절제술 받고 출혈로 오신 분요.” “예!” 잠이 달아나 버렸다. 응급실로 달려 가보니 환자 혼자 와 있었다. 환자는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 버린 것 같아 보였다. 얼굴은 좀 창백해 보였고 입술은 지난 번 수술 때 전기 소작시 남은 작은 흉터가 보였다.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청해온다. 환자는 내가 잘 대해줬다는 사실과 집도한 의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전에 없이 정중하고 공손한 태도로 대해 주었다. 병실로 올라온 환자는 2년차 선생님 두 분을 찾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난 외래로 병실로 뛰어다녔다. 환자가 시도 때도 없이 간호사들을 호출한다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2년차 선생님들도 그 환자를 피해 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전체 회진을 돌 때면 회진 도는 실습학생들 틈에 끼거나 제일 뒤쪽으로 피하곤 했다. 수술후 고통받는 환자를 보니 입원비용이라도 감하여 드려야 할 것 같았다. 같은 질환으로 반복 입원하게 된 데는 의사의 책임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의료지원과 직원과 상의하에 비용을 감하여 드리고 난 후 환자의 불평은 조금 수그러들었고 그 이후에 조용히 퇴원하게 되었다. 퇴원 후 1주일 동안의 당직은 나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혹 또 그 환자가 아닐까하는 생각에 호출기 소리가 날 때마다 깜짝 깜짝 놀라곤 했다. 이런 우여곡절끝에 1년이 지나갔고 난 2년차가 되었다. 응급실 호출 횟수도 줄어 들었다. IV 어느날 절친한 친구가 결혼하다고 하여 함을 팔러 신부댁으로 갔다.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함 사세요” 라고 외쳤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함 파는 일은 처음이었다. 잘못온 것 같아서 계단으로 올라가서 확인하려 하는 순간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신부 친구들과 형부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결국은 힘에 이끌려 우린 신부댁으로 들어갔고 현관입구에서 바가지를 깬 순간 난 깜짝 놀랐다. 신부 형부들 중에 어디서 많이 본듯한 사람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누구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그 분이 먼저 ‘저 모르시겠습니까?”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는 시늉을 하자 자기가 그 편도 수술환자였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아, 그 환자 분’ 그런데 어떻게 이런데서 만나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어리둥절 했지만, 곧 난 그분과 함께 웃을 수 있었다. 그 후로 조금 출혈이 있었지만 아주 양이 적어 응급실에는 안갔다고 하며 웃는 것이었다. 나도 혹 오시지나 않을까 가슴조리며 지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런 인연이었구나. 병원생활을 하면서 좋은 일도 많았지만 서로의 입장이 달라 얼굴을 붉힐 때도 많다. 의사로서 환자를 내 부모, 내 가족처럼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예전에 태풍으로 벼농사를 망친 할머니께서 입원하셨을 때가 생각난다. “할머님, 힘드시죠? 저 진료 끝나거든 넘어진 벼 세우러 갈께요.” 했더니 “고맙습니다 선상님, 그래도 저처럼 아픈 환자가 왔다가 선상님이 안계시면 더 고통스러울겁니다”라고 사양하시고 불편한 걸음을 옮기시던 할머님의 따뜻한 말씀 한마디가 나의 지친 마음과 행동을 다독여 준다. 이 때문에 징병전담의로서 불만을 토로하는 수검자나 보호자와의 관계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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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존경이함께하는 직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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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인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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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쟁이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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