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충북청장으로 부임받았을 때, 김홍도가 연풍현감으로 재직했다는 사실을 알고 바로 연풍으로 달려간 것도 이런 연유에서였다. 연풍은 조령 새재를 지키는 요충지로 충청도와 경상도의 접경지역이기도하다. 200년전 현감(縣監)이 근무하던 풍락헌(豊樂軒)이라는 縣聽이 세월을 싸 안은 채 아직도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앞의 당시 향청(鄕廳)이었던 자리는, 지금은 천주교 성지가 되어 순례자들의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단원이 연풍현감을 除授받은 것은 1791년. 그의 나이 47세 때였다. 40대 중반의 畵員이 일약 현감으로 발탁된 것은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임란 이후 조선사회에서 그림이란 천한 기예(技藝)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일개 도화서(圖畵署, 조선시대 때 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 畵員을 관리로 발탁하는 예는 매우 드물었다. 임란 전에는 이런 일이 간혹 있어 최경, 안견, 이상좌 등이 堂上官류의 벼슬을 받기는 했으나, 현감 등 지방수령을 지내지는 않았다. 김홍도 직전의 정선이 18세기 초 양천 현감을 지내긴 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老論의 비호를 받은 양반사대부 출신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김홍도처럼 일개 중인출신의 화원이 지방현감의 자리에 오른 예는 거의 없었다.
흔히들 김홍도를 풍속화의 대가로만 알고 있을 뿐, 그에 관한 자세한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홍도가 보고 배웠을 정선, 윤두서, 심사정, 조영석 같은 사대부 화가들은 스스로의 기록도 남기고, 친분이 있는 사대부들이 작성한 日誌도 남아있지만, 김홍도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당시 그의 그림을 받아 소장했던 양반들 조차도 그들의 문집에서 김홍도의 이름을 고의로 빼 버림으로써 그를 아는 데 한계가 있다.
당시 그림에 대한 천시가 이러했을진대, 그런 와중에도 유독 홀로 빛나는 김홍도야말로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흔히 천재는 타고난 재능과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 그리고 부단한 노력에 의하여 만들어 진다고 한다. 나는 우선 김홍도가 살았던 시대를 살펴 그의 전설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김홍도는 20대 때 벌써 영조의 어진(御眞)을 그렸고, 정조까지 3회에 걸쳐 어진을 그렸는데, 특히 정조로부터는 특별한 은총을 입었다. 그는 늘 정조를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파초도를 가르쳐주기도 하고, 정조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금강산을 그려 보여드리기도 한다.

그는 화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임금의 신임을 받는 유능한 관료이기도 했다. 일본정세를 알아보기 위해 밀명을 띠고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으며, 정식 사절단의 자격으로 중국을 다녀온 적도 있었다. 정조가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강조하고자 했던 주자학을 널리 알리기 위해 주자의 8덕목을 8폭 병풍 그림으로 顯示해 정조에게 바쳤는데, 이를 본 정조가 감격하여 울먹였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800년 그 울음으로 정조는 돌아가고 정조의 죽음으로 우리의 전설 김홍도는 몰락의 길을 걷게된다.

그후 6년간 그는 좌절과 가난과 외로움을 못 이겨 숨어 지내다가 숨을 거둔다. 사대부가 되려다 꺽인 환쟁이의 외로운 전설은 오늘의 우리로 하여금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그래서일까, 이 무렵 김홍도 그림을 보면, 圖畵署 화원이 아닌 사대부의 화필이 살아있다. 시대의 혼을 담은 그의 그림들에서 한국화 최고의 경지를 느낄 수가 있다.

김홍도가 일생 남긴 그림은 500여점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풍속화는 물론이고 산수화, 사군자, 화조도, 인물화, 기록화를 망라하며 심지어는 불화, 판화까지 있다. 그뿐인가, 그의 낙관이 찍힌 춘화도도 많이 남아있다.
환쟁이 김홍도의 일생은 그만큼 전설적인 것이었다.
그림 외에 그가 남긴 것은 가난 속에 내동댕이 쳐진 아들 연록이었다. 연풍에서 낳은 늦둥이 아들이라 이름도 연록이라고 했다. 그 아들이 아버지 김홍도의 편지와 글을 정리해 모은 것이 “檀園遺墨帖”인데, 이것이 그나마 김홍도의 작품세계를 헤아려 볼 수 있게한다.
아들 연록 역시 순조의 매제인 홍현주 형제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들과 어울려 그림을 그렸다고 하며, 김정호까지도 그의 그림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로 그 역시 뛰어난 실력을 갖춘 화가였다고 한다.

김홍도를 돌아보면서 오늘의 예술과 우리의 현실을 다시 생각해 보게된다. 技藝를 천하게 여기던 시대에 조차도 그의 천재성은 인정받고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한 나절에 사라질 명예와 금전에 집착하고 이를 위해서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이합집산을 일삼는 우리들.이제는 환쟁이의 전설속에 역사 저머너로 사라져 버린 그가 새삼 그리운 것은 나만의 소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