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꽤나 오래 됩니다. 학술적으로 말하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진찬의궤(進饌儀軌), 부인필지(夫人必知) 등의 기록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즐겨 먹은 음식으로 추측되지요.
이런 일화도 있더군요. 조선초기쯤인가요, 세종대왕이 북방 개척을 하면서 여진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할 당시 중국 조정은 꽤나 귀찮아하면서 이 힘센 `조선오랑캐’무리를 약화시키기 위해 몸에 해로운 성분이 있는 메밀을 보급했지요. 그런데 중국사람들이 먹으면 배탈이 나거나 하던 메밀을 우리 조선인들은 구황작물로 받아들여 재배한 뒤 지혜롭게 냉면으로 만들어 먹는 방법을 개발했지요. 덕분에 아주 맛있는 음식이 하나 생기게 됐다는 이야기도 야담처럼 전해집니다.
이처럼 냉면은 메밀이나 전분을 주원료로 하다보니 토양이 척박한 이북지방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으로 피난과 함께 내려와 지금은 전국민이 사랑하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냉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지지요.
흔히 평양냉면이라 일컫는 물냉면과 함흥냉면으로 불리는 비빔냉면 또는 회냉면이지요. 평양, 또는 함흥에서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관서와 관북지방을 대표하는 도시를 따 이름지어졌지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재료입니다. 말아먹고 비벼먹는 차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는 메밀로 만들고 다른 하나는 고구마 또는 감자 전분으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중요한 차이를 모르면 냉면을 맛있게 먹을 수가 없지요. 그 이유는 뒤에서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입니다.
냉면은 시원하게 먹는다 해서 여름음식으로 알기 쉬운데 사실은 겨울음식이랍니다. 이유는 메밀 또는 고구마의 수확시기를 생각해보면 금세 답이 나오죠. 메밀이나 고구마, 감자 모두 북쪽에서는 따뜻한 남쪽과 달리 가을이나 돼야 수확이 되지요. 또 옛날에 저장시설이 발달이 돼있지 않으니 자연히 겨울의 추운 날씨를 이용한 천연저장법에 따라 겨울에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연유에 의해 원래 냉면의 맛은 1월부터 5월 사이 겨울을 지나 여름이 오기 전까지가 가장 좋고 여름이 가장 맛을 느끼기 힘들다고 하는데요. 특히 말복을 지나면서 찬바람이 난 이후에야 비로소 제맛이 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쪽, 남쪽 가릴 것 없이 대중화됐고 또 시원함을 즐기는 기호가 자리잡으면서 오히려 여름철에 인기가 높아지게 됐습니다.

은 기호에 따라 물냉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비빔냉면을 좋아하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이북사람들은 자존심이 대단해서 평양쪽 사람들은 함흥냉면을 냉면축에도 끼워주지 않더군요. 반대도 마찬가지이구요. 관서사람들은 냉면을 먹을 때 목을 타고 넘어가며 배를 꽉 채워주는 육수의 맛 때문에 먹는다고 하고 관북사람들은 가늘게 씹히는 면발의 쫄깃쫄깃함에다 웃기로 얹어놓은 홍어회무침에 매운 양념을 더해 먹는 그 군침 도는 맛과 매운 맛을 씻어냄과 동시에 입안에 두터운 포만감을 더해주는 뜨거운 육수 맛을 자랑하더군요.
재미있는 이야기는 옛날 장유유서가 엄격하던 시대에 냉면이 노소화친의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하더군요. 겨울철 한 마을의 양반집에서 마을사람들에게 냉면을 내는 잔치를 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 모여 요즘말로 냉면파티를 벌이게 됩니다. 그런데 수염을 휘휘 날리는 점잖은 양반노인네도 냉면을 먹을 때만은 체면을 구길 수밖에 없게 되는데요. 무슨 얘기냐 하면 이 놈의 냉면 면발은 젓가락으로 건져먹을 수 있는데 그 맛있는 냉면육수를 먹고 싶은데 먹자니 그 큰 냉면 사발을 들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는 겁니다. 왜 그 당시에는 음식을 먹을 때 그릇바닥을 보이는 것은 상놈들이나 하는 짓이라고 했잖습니까. 이렇게 되니 반상이 따로 있을 수 없고 노소가 유별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냉면잔치를 여는 날이면 마을이 한바탕 떠들썩 유쾌한 웃음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물론 평양냉면의 이야기지요.
함흥냉면 역시 겨울음식이었다는 건데 이렇게 먹어야 제맛이었다고 합니다.
한겨울 수확한 고구마를 갈아 전분을 내 만든 면을 우선 삶습니다. 잘 익혀진 면을 찬물에 식혀 고추장에 참기름 등등 맛있게 양념한 뒤 군불을 지펴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모여 속이 듬뿍 든 김장김치와 함께 먹고나면 양념의 매운맛과 군불의 열기가 합쳐 콧잔등이나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쳐내기 바빴다는 겁니다.
냉면은 이렇게 맛도 좋지만 또한 몸에 좋은 영양성분도 많답니다.
함흥냉면의 주원료인 전분은 ‘동의보감’에 오장을 튼튼하게 하는 오곡지장이라고 쓰여 있고 중국의 최고 한의서인 ‘본초강목’에는 위를 실하게 하고 기운을 돋구며 정신을 맑게 하고 오장의 찌꺼기를 제거하여 살과 피를 맑게 한다고 쓰여있습니다. 그래서 전분은 발한 해열제로 사용되기도 하고, 주독해소에 좋으며 위장장애, 소화불량 해소에도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며, 갈증해소, 이뇨작용에도 좋고 지사제로 사용되기도 한답니다.
그런가 하면 냉면 육수는 충분한 수분을 공급해주고, 식초는 땀을 많이 흘린 후에 피로 회복제로 도움을 주지요.
냉면에 넣은 겨자는 여름철에 식품이 상하는 것을 방지, 배탈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고 메밀은 특히 젊은 여성들이나 주부들의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잘 아실 것이구요.
이렇게 사설만 늘어놓고 언제 냉면 먹어보나 하실 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모두에 말씀드린 그 `대빵’분께서 가르쳐주신 것이고 저 자신 그대로 따라 해본 것인데 정말 냉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우선 평양냉면을 먹고싶다고 할 때 그 면발부터 보십시오.
면발이 가늘면 절대로 그것은 평양냉면이 아닙니다. 육수에 말아먹으면 다 평양냉면이 아닌 것입니다. 평양냉면은 재료가 메밀이기 때문에 따로 전분을 약간 섞어 만들지만 이빨로 쉽게 잘 끊어집니다. 그래서 물냉면을 주문한 뒤 가위를 들고 와 “잘라 드릴까요” 그러면 오늘 평양냉면 먹는 것은 포기하십시오. 그리고 평양냉면에는 고명으로 오이채, 배채, 삶은 달걀, 편육 등이 들어가게 되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삶은 달걀의 용도를 모르더군요. 그 ‘대빵’분의 말씀인 즉 냉면은 뭔가 다른 음식을 먹고 마지막 마무리로 먹게 되기가 일반적인데 삶은 달걀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답니다. 삶은 달걀은 입속에 남아있는 다른 음식의 맛을 깨끗이 지워주는 역할을 하므로 냉면을 먹을 때는 삶은 달걀부터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냉면만의 제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는 거지요. 지금까지 마지막에 먹었던 분이나 중간에 먹었던 분, 또는 아예 먹지 않고 남겨둔 분들은 제 이야기대로 한번 실험해보십시오. 냉면맛이 훨씬 다르게 느껴지리라 믿습니다.
또 하나는 육수, 즉 국물입니다. 옛날 쇠고기나 닭고기 등이 흔하지 않던 시절, 특히 관서, 관북지방의 산간에서는 꿩고기로 육수를 내었다고 하는데요. 상대적으로 산간이다보니 꿩이 흔해서 그랬겠지요. 그런데 꿩이란 놈의 육질이 단단한 편이 못돼 여름에는 쉽게 상하기 쉬워 닭고기로 대신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쇠고기 사골이나 갖가지 부위 살 등을 넣어 육수를 냈다고 하지요. 한국 냉면의 최고의 비밀은 이 육수에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이 육수를 남기면 절대로 안된다고 합니다. 냉면 대접이 큰 편인데다 거의 가득 담겨져 나오는 육수를 다 먹게 되면 그 포만감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육수는 먹을수록 감칠맛이 더해져 자꾸 먹게되는 경험을 저 자신도 수없이 했습니다.
함흥냉면의 경우에는 손의 온기에도 사리의 맛이 변한다고 할 정도니 차게 나온 직후 빨리 먹을수록 제맛이라고 합니다. 또 냉면 위에 얹혀 나오는 홍어회는 양념장과 사리를 잘 비빈 후 하나씩 쌈을 먹는 기분으로 얹어 먹어야 제대로 맛을 즐길 수 있으며, 기호에 따라 식초, 설탕, 겨자를 첨가해서 먹으면 개운한 맛을 한층 더 즐길 수 있겠지요.

몇 군데 냉면집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 글의 취지가 맛집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서 자세하게 소개할 수는 없습니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냉면선생님’이 오리지널 평양냉면에 가장 가까운 맛을 내는 곳으로 가르쳐주신 곳입니다. 오리지널 평양냉면이라니 무슨 소린가 하겠습니다만 우리가 먹는 냉면은 이미 남한화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 자신 1992년에 평양을 갔다온 적이 있습니다만 당시 평양냉면집으로 유명한 옥류관, 청류관, 청춘2관 등이 있었습니다. 전 당시 오리지널 평양냉면을 맛본다는 기분에 매우 흥분해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맛이 왜 이래’란 실망감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곰곰이 따져보니 가장 큰 차이가 조미료 차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평양냉면이 서울 와서 서울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한 것이지요.
각설하고 우선 서울 을지로 4가에 있는 ‘우래옥’에 들러보십시오. 여기서는 불고기와 함께 냉면을 드셔보십시오. 중구 필동에 있는 ‘필동면옥’에서는 왕만두와 냉면을 결혼시키시고 구파발에 있는 ‘만포면옥’에서는 빈대떡을 먹고난 뒤 냉면을 드셔보세요. 그리고 서울 시청 뒤의 ‘남포면옥’에서는 어복쟁반을 주문하십시오. 어복쟁반은 남북이산가족 방문 행사를 하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는데 커다란 놋그릇에 고기와 배, 버섯, 배추 등을 넣고 육수를 부어 끓여 먹은 뒤 남는 국물에 만두나 냉면 사리를 넣어 먹을 수 있는 음식입니다.

어쨌든 냉면이 한국음식으로 보편화되면서 각종 다양한 냉면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냉면 국물에 밀가루 국수를 만 밀국수 냉면, 고기 장국을 끊인 육수를 차게 해서 먹는 장국냉면, 통깨를 희게 볶아 갈아서 육수를 부어 체에 바친 찬 국물에 냉면사리를 넣어 소금간을 한 깻국냉면, 동치미 국물에 사리를 넣어 시원하게 먹는 동치미냉면, 칡의 전분을 사용한 갈색면에 독특하고 시원한 육수에 배와 오이를 얇게 채 썰어놓고 무로 녹말의 독을 해소시켜 만든 칡냉면, 꿩고기를 이용한 맑은 장국이나 고아낸 국물에 메밀국수를 만 생치냉면 등 일일이 들자면 한도 끝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저러나 냉면, 이만큼 알았으니 훨씬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