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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감상] 단장의 숲 '

장돈식(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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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산에 혼자 살면 외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산 생활에는 여기서나 사귈 친구들이 꽤 있다. 언젠가 ‘山房四友’라는 글로 이곳의 내 친구들을 피력(披瀝)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대로다. 나의 산 생활 십여 년 중, 초기부터 우리와 희로애락을 같이한 진돗개 억세, 나는 그를 친구로 아는데, 녀석은 나를 하느님으로 아는 게 좀 부담스럽다. 제 집을 두고서도 밤이면 내 서재 발치에서 같이 자는 다람쥐, 새매에게 휘몰리어 죽을 뻔한 것을 살려준 후, 보은이라도 하려는 듯 벌레를 물고 와 내 입에다 먹여주려고 하던 숫 딱새, 그리고 오늘 얘기의 주인공 왕토끼, 이들 네 이웃의 가족들은 글자 그대로 십년지기(十年知己)로 친교를 맺어 살기에 적적한 줄 모르고 오늘을 산다. 그런데 이변이 생겼다. 지난해 여름, 어처구니 없는 사건으로 왕토끼네 가족과 단절이 된 것이다. 위의 네 친구들 중 가장 겁이 많고 곁을 주지 않아, 나의 짝사랑이던 왕토끼네들과는 사고가 나던 때만큼 사귀는 데는 긴긴 세월이 사이에 놓여 있다. 매일 하는 산행 코스중의 한 곳, 길가 양지바른 숲에는 다른 산에서는 보기 드문 산토끼네 가족이 살고 있었다. 여느 산토끼와 비교해 어찌나 큰지, 이 지역 사람들의 산사냥 대상 제1호다. 이 왕토끼는 너무나 선량한 게 병이어서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들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관심으로, 관심은 관찰로, 사랑의 대상으로 이어졌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도 그렇지만 야생동물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오랜 애정 어린 접촉이 필요하다. 자기를 해치지 않는 존재임을 알게 한 다음의 단계는 눈맞춤이다. 서로 눈이라는 창을 통해, 마음 즉 기심(機心)을 읽는다. 마음에 사특함이 없고, 때가 묻지 않아서일까 짐승들은 사람보다 기심 읽기에 민감하다. 예를 들면 억세는 놓아 기르는 개인데. 평소에는 무시로 내게 와서 안긴다. 그러나 발정된 암캐라도 있어 너무 정신이 팔려 돌아다니면 마음으로 ‘한동안 붙들어 매야겠다’ 생각만 해도 그 시각부터는 절대로 내 곁에 오지 않는다.

조선조 초기 한명회는 한강 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지었다. 그리고 노후를 운치있게 강을 나는 갈매기와 노닐며 한가히 지내고자 해서 정자 이름을 짐승 길들일 압(狎)字에, 갈매기 구(鷗)字, 압구정(狎鷗亭)이라고 했다. 그런데 갈매기들은 순진한 어부들과는 잘 어울려 저들의 배에 내려앉고, 주는 물고기도 먹었으나 한명회의 정자 근처는 얼씬을 하지 않아 그를 머쓱하게 했다고 전한다. 권모술수로 얼룩진 정자 주인의 마음을 기심(機心)으로 알았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내가 매일 오르는 등산길 녘에 있는 싸리와 칡이 어우러진 숲에 이르르면 거기에 쭈그리고 앉아 조용히 기다린다. 이전에 여기서 토끼를 본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만에 숨었던 토끼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 그러다가 거기에 앉아 있는 노인을 보고 기겁하고는 어찌나 잽싸게 도망을 치는 지. ‘토낀다’라는 말이 이래서 생겼구나 생각했다. 그러기를 몇 년, 늘 거기에 있는 사람이라는 동물은 자기를 헤코지 하려는 의사가 없음을 알게 되는가 보다. 주춤거리며 달아날 자세를 하기는 하되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여유를 가진다. 그러다가 언젠가 눈이 마주쳐서 사람의 시선을 피하지 않게 되면 반은 성공한 것이다. 눈이 맞아 몇 분이 지나면 그날은 그만 조용히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다음날 그 시각쯤 또 토끼숲 앞에서 기다리고, 눈도장 찍고, 이튿날은 조금 더 가까이 갔다. 왕토끼 중에서도 크고, 몸집에 비해 머리가 작고, 히프의 팡파짐한 곡선으로 보아 암컷이 분명하다. ‘토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여름철 신선한 푸새와 살찐 나뭇잎을 실컷 먹는 계절인지라 토실토실 하고, 암갈색의 털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짙푸른 숲을 배경으로 요염하게 앉은 토숙이, 사람으로 치자면 팔등신 미녀가 나에게 마음을 조금씩 주는 기미가 보인다. 그 기분, 짝사랑하던 연인이 차츰 내게 마음을 여는 것과 같다. 조용히 대좌, 서로 바라본다. 흑요석(黑曜石) 보다 검고 빛나는 그 눈, 눈에도 성징(性徵)이 있다고 한다. 토숙이와 나의 시선이 마주쳐서 점화된 나의 미감신경(美感神經)은 오르가즘이 되어 온몸을 경련하게 한다. 멀지 않은 날에 우아한 귀언저리를 만져보고, 등허리 근처를 쓸어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4월에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데이트는 가을이 되어서는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깝게 다가올 수 있게 됐다. 산에 오르기가 신이 났다. 오후면 만사 제쳐놓고 등산화 끈을 들메는 나를 보고 아내는 “토숙인가 하는 년하고 잘 돼가우, 당신은 첩년 같은 토끼를 산에 두고 아주 푹 빠지셨군요.”하며 웃는다. 설마 투기(妬忌)는 아니겠지만 미상불 마음에 걸리지 않는 말도 아니다. 내가 언제 아내에게 이토록 지극정성으로 대했던가.

8월 하순 어느 주말 인천 집엘 다녀왔다. 3일 만인 월요일 오전, 서둘러 산에 올라 그 숲 앞에 이르러 밭은 기침으로 기척을 한다. 한참을, 두참을, 기다려도 토숙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얼마를 기다렸을까. 허탕을 치고 다음날 다시,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러기를 4~5일,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사냥철이 아닌데, 아니지 겨울에 놓았던 올무가 있어 거기에 걸릴 수도 있지. 악몽같은 추측, 답답한 심정이 일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전히 그 숲 앞에서 서성이는데 뒤에서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이 있다. “왜 여기 계세요. 산에 오르시지 않고”한다. 조씨다. 60대의 이 사람은 IMF 여파로 부도를 내고, 지금은 저 밑 국도변에 있는, 역시 부도가 난 빈 호텔에 은신하고 있다고 했다. 산에서 가끔 만나 인사하고 지내는 사람이다. S대학 법대를 나왔으나 관계(官界)나 법조계로 나가지 않고 건설업을 했다고 하며 늘 제 자랑이 대단했다. ‘토끼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아, 그 토끼새끼요, 며칠 전에 여기를 지나는데 토끼 한 마리가 어름어름하더군요. 산짐승이 몸에 좋다기에 한밥 먹으려구 이 막대기로 내리쳤지요, 그놈의 허리를 겨눴는데 빗맞았는지 뒷다리를 질질 끌며 저 숲으로 들어갔어요. 덤불을 헤치고 찾아봐두 숲이 너무 우거져서 허탕쳤어요. 아깝데요.” 하며 들어 보이는 참나무 지팡이가 실팍하다. 순간, 머리를 둔기에 맞은 것 같이 어지럽고 창자가 땡겨져서 허리를 접으며 주저앉았다. “왜 이러시나”하며 부축하려는 그를 뿌리칠 힘도 없었다. ‘이런 자와 한 하늘 아래 살아야 하는가.’

동물애호가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는 “사람의 손에 길러 온 동물을 야생으로 돌려보내기”라던 말을 현실로 경험한 것이다. ‘나 때문이다. 얼치기 자연사랑, 동물사랑이 멸종위기의 귀중한 한 생명을 잃게 했다’는 회오(悔悟)는 그 후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이제 한 계절이 지난 엊저녁, TV에서는 춘천 근교 삼악산 산장(山莊)지기의 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초로의 그가 마당에 내려 휘파람을 불고는 땅콩이니 해바라기니, 다른 씨앗 따위를 손바닥에 놓고 기다린다. 근처를 날던 곤줄박이, 박새, 딱새 따위의 작은 새들이 날아들어 그의 머리에, 어깨에, 팔에 앉는다. 그는 “새들도 위아래가 있어 서열대로 먹는다”며 아는 척도 하고, 마구 행복해한다. 문득 내 등산로 그 “단장(斷腸)의 숲”에서 토숙이와 지냈던 한 때가 떠오르며 눈앞이 흐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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