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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독자살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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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살롱] 장마루촌의이발사/여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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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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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루촌의 이발사 - 나정호(작가)
여름을 기다리며 - 이혜련(창원지방병무사무소)
장마루촌의 이발사 - 나정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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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정 호 (작가)
월간문학·신라문학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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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가 잡초 속에 핀 코스모스였던가. 그 어줍잖은 한 송이 꽃 때문에 왜그랬는지 도저히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앓이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장마루 촌의 이발사'라는 영화를 보고도 그 여주인공이 너무
가엾어서 사흘 동안이나 그 슬픈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한 동안 그 코스모스 때문에 가슴에
와 닿았던 그 무엇의 정체를 찾아내고자 끙끙거렸다. 딴에 글을 쓴답시고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끝내 중도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 때가 고등학교 이학년 학기 말 무렵이었다. 그저 마음은 언제나 시인이었고 소설가였으니
그것은 막연한 동경을 현실로 착각한 우행이라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나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시절에는
어떤 하찮은 현상이나 사물에도 결코 무관심할 수 없었고 촉수에 와 닿는 미미한 자극에도 괜히 신경을
곤두세우는 섬세함이 있었다.
이따금 TV에서 지난날의 영화를 접하게 된다. 대부분의 영화는 학창시절에 본 적이 있는 것들이어서
비교적 극의 전개에 익숙한 탓인지는 모르나 예전처럼 가슴을 뭉클하게 울리는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 장면이 얼마나 아름답고 인상적인 장면인데 아무런 감흥이 없을까 하는,
차마 그 때의 감정이 가슴 안에서 느껴지지 않는 야속함에 때로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요즘 들어 부쩍
음악과 가까이 해 보고, 그림을 그려보고, 연극을 관람하면서 나름대로 감상을 피력해 보곤한다. 나는
그런 것들과 대면하거나 또는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무미건조한 생활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네들의 얘기가 그저 생소하기만 하고 그런 것을 얘기할 그 무엇도 갖지 못한 것에 그저 부끄러워지기만
한다. 나의 천성이 과연 예술적인 모든 표상물에 대하여 둔감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나도 한 때 한
송이 꽃, 한 편의 영화에서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환류를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것이 이제 햇수로 쳐서 고작 이십 년이 지난 날에 불과하다. 과연 나이가 들면 감각이 무디어진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 지혜만 남은 늙은 플라톤은 아니며 더구나 모든 사유의 자유를 박탈당한 이상(李箱)일
수도 없다.
그런데 이 무감동 무반응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음악이나, 연극, 미술 작품을 접하고 난
이들의 감상의 피력이 온당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최소한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근저에는
한사코 인간이고자 하는 절대적인 노력이 있는 것이다. 나는 설마 그 노력마저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실과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지적 오만은 철학자 같아서 멋이 있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정서적인 모든 것과 유리되어 살아간다면 이것은 분명히 비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비정적인 물질문명 속에서 사유의 단위가 수치화해 버린 현실을 절대시하는 우행을 겁도 없이 선택해
버린 자의 불행인 것이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없다. 그리고 모두 잃어버렸다. 가장 소중한 나의
추억, 그 코스모스와 '장마루촌의 이발사'를.
감상은 건전한 정서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하여 오로지 감상을 극복하는 데서만이 위대한 정신과 자유가
창조된다고 한다. 지금 이러한 나의 생각조차도 어쩌면 하찮은 감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들은
감상을 타기 할지라도 나는 그 치기 어린 감상을 옹호하고 싶다. 그 속에는 진정한 인간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나의, 감상도 갖지 못하는 무감각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한숨과 눈물이 비생산적이라고
비판받아도 좋겠다. 가누기 힘든 센치멘탈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진정한 마음의 가치가 아니겠는가.
진정 눈으로 볼 수 없는 이 감정의 유희가 눈에 보이는 현실의 건조함을 윤택하게 할 수 있으리라. 내가
누구인가를 확인조차 할 새 없이 바쁘게, 그러나 아무 의미도 없이 분주하게, 오늘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군상들에게 나는 이 마음의 선물을 주고 싶다.
나는 이제 아름답고 소중한 정감의 환류를 회복하기 위하여 새와 꽃과 구름과 더불어 더욱 친화해야겠다.
그리고 창을 열어 나를 해방시켜야겠다.
자잘한 생활의 잡초 넝쿨들로부터 하늘을 향해 소리치고, 그리고 더욱 높이 날아야겠다. 잊고 있었던
코스모스를 찾아야겠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코스모스 이야기를 쓴 글도 되찾고 싶다. 내가 미처 잃어버린
모든 것들, 그것이 내 안에 다시 환하게 피어나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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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기다리며 - 이혜련(창원지방병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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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살롱 #2
이 혜 련(창원지방병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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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을 알리는 벚꽃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놓더니 이젠 또 한번 더 벚꽃잎이
떨어지며 거리를 백지로 만들어 버렸다.
아침 저녁엔 쌀쌀함을 느끼지만 한낮엔 여름이 다가왔음을 호흡으로, 나른한 몸으로 느끼게 된다.
병무청을 나의 직장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9년째다.
짧은 직장생활이지만 뒤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분의 도움이 함께하는 생활이었기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결혼 전에는 어머니가 아침밥을 늘 따뜻하게 지어주셨고 아버지는 늦잠자는 딸의 출근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산에서 창원까지 당신의 차로 출근을 시켜 주셨다. 결혼 후에는 부엌일에 익숙하지 않아 항상
소홀한 식탁차림에도 반찬투정 한번 하지 않으며 세탁, 청소 등을 도맡아 하는 남편과 아이를 길러주시는
친정부모님이 계시다.
직장 내에서도 공적인 업무나 사적인 집안일에도 늘 배려해주고 내일같이 챙겨주고 걱정해주는 상사분과
동료가 곁에 있었기에 직장생활과 가정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
때로는 전업주부처럼 편안히 집에서 가사와 육아에 전념하고 있을 내 모습을 그려 보기도 하지만,
그랬더라면 내 곁에 있는 지금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는 커다란 행운과 항상 새로운 긴장감에
나태해지려는 나를 다잡아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놓쳐 버렸으리라 생각한다.
지금도 성급한 사람은 반팔 소매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며 민원실에 상담을 하러오고 있다. 우리
사무실 동료도 나도, 곧 반팔 소매 옷을 입고 바지를 걷고서 덥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부채를 부치고
선풍기 쟁탈전을 벌일 것이다. 한여름 땀 냄새를 풍기며 근무하면서 내 옆자리의 동료를 느낄 것이며,
그렇게 여름을 보내리라.
숨이 막히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쏟아지는 날씨를 생각하면 여름이 정말 싫지만 서로를 배려해 주는
넉넉한 마음들이 있기에 여름이 그렇게 두렵지만은 않다.
그래서 난 지금 봄이 저만치 가고 있지만 전혀 아쉬워 하지 않고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내 주변의 많은
고마운 이들과 건강한 여름을 보내기를 바라면서...
군무원 생활을 하고 있던 중 병무청으로 부처 배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병역문제와 관련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던 기관으로 내가 간단 말인가 하고 솔직히 기분이
별로 였습니다. 그래도 국가기관이니 군무원 생활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병무청을
선택했습니다. 2000. 8. 1일 처음으로 병무청에 왔을 때는 너무 좋았습니다. 군복 입은 사람들도
없었고 과장님들과 팀장님, 직장 선배님들께서도 너무나 잘 대해 주시고… 군대문화에 익숙해지려고
하던 저에게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자유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찌된 연유인지 과 배정도 다른
과에 비해 비교적 직원들의 선호도가 높은 동원과로 배정을 받았기 때문에 저에게는 행복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몇달간은 …) 그러나 차츰 업무를 배우면서 이렇게 어려운 업무를 하는 부서를 왜들
선호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바보가 아닌가 하는 고민도 심각하게 해 보았구요!!
저한테는 무척 어려운데 저를 뺀 모든 분들이 동원과 업무가 뭐 그리 어려우냐 하시니까 말입니다.
또한 집행을 다닐 때는 사무실이 아닌 밖으로 한번씩 나갈 수 있어 참 좋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실제로도 좋았구요. 기분전환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더라구요.
병력수송을 할 때는 수송이 무사히 끝날 때까지는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혹시 잘못가고 있지는 않나,
시간안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는 불안감들이 잔뜩 밀려옵니다. (아직 경력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무사히 인도인접지에 도착하고 나면 또 여러 가지 할 일이 많더라구요.
소집부대 담당자들의 불만도 들어야 되구요. 인원점검과 유고자 파악도 해야하고 말입니다. 특히
경제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회사일을 뒤로 미루고 훈련에 꼭 참가하라는 독려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분들의 상황이 어떤 경우에는 너무 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그분들의 사정을 먼저
귀기울여 들으려 합니다. 그리고 나서 병무청 공무원으로서 저의 입장을 그분들께 설명합니다. 어떤
분들은 쉽게 이해해주시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화가 나서 그냥 전화를 끊어 버리기도 하시더군요.
동원업무를 하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업무에 대한 긍지와 사명감입니다. 처음에 너무 쉽게
생각하고 접했던 동원업무였지만 지금은 그 중요성을 어느정도 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중요성을 느낄
때마다 제가 하는 일에 대한 보람도 더 느끼게 되고 말입니다.
아직까지는 미숙하고 실수투성이지만 앞으로 새내기인 저에게는 할 일이 많습니다. 열심히 해서
민원인들의 공무원에 대한 인식도 바꿔보고 싶고(하루 아침에 되지는 않겠지만). 동원업무를 잘
하면서도 예비군들의 개인생활이 동원훈련으로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싶습니다.(꽤 오랜 시일이 걸릴 것 같지만). 때로는 힘들고 괴로울때도 있지만 새내기 공무원인
저에게는 걸림돌이 없을 것 같습니다(아직 신참이라고 다들 봐주시거든요).
앞으로 민원인에게 사랑받는 병무청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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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여름호 병무지
통권 제 48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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