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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칼럼 - 한국의 위기와 선택     
이 기 동 (성균관대 교수)     


한국의 위기와 선택

한국의 정치와 교육 구조가 위기 상황에 직면한 것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한편으로 괄목할 만한 경제적 발전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경제마저도 위기 상황에 직면하여 우리의 총체적인 사회구조는 더이상 의지할 데가
없게 되었다.
지금의 상황은 누구의 잘잘못을 가려 책임을 추궁하고 있을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모두 한마음이
되어, 이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힘과 지혜를 내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 절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경제마저 무너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떠한 양상으로 변모할 것인가? 대부분의 기업은 외국인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한국인들은 외국인이 경영하는 기업의 머슴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실업자가
대거 발생할 것이고, 수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떠돌게 될 것이다. 일확천금을 노린 유괴납치극이 발생하고,
강도 사건이 빈발할 것이며, 살인 사건도 도처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치안이 극도로 불안해져,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사회로 전변하고 말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나라에서 시행된 모든 정치, 사회제도는 유구한 역사 속에서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유지하며,
민족의 정서와 체질에 적합하게 만들어졌고 또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계승 . 발전되어 온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을 당하면서 우리의 제도는 타의에 의해 모두 박탈당한 채, 외국의 것이
이식되었다. 독립을 이룬 후에도, 정책 입안자들은 성급하게 외국의 제도를 무비판적으로 들여와 시행하였고,
문제가 발견되면 다시 다른 것을 들여오고, 또 맞지 않으면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거듭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개헌이 수시로 이루어지고,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제도가 십년도 안되어 자주 바뀌는
가운데 사회 전체는 점점 혼란의 도가니에 빠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늘날의 정책 입안자들은 외국의 제도를 도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허나 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들여온다 해도 바람직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외국의 제도를 도입하기에 앞서
우리의 고유한 정서와 체질을 파악해 놓지 않는다면, 아무리 새롭고 훌륭한 것이라 해도 그것이 우리 상황에
적합하고 바람직한 제도가 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이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없는 것인가? 속수무책으로 앉아서 파산해 가는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이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의 과거를 차분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과거의 우리 민족이
세계적으로도 위대한 민족이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한글의 창제,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고려의 청자, 조선의 백자, 제지술과 인쇄술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 본존불은 그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세계 어디에 있는 불상보다도 우수하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렇게 훌륭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민족에게 다른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는
빼어난 능력이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런 빼어난 능력이 현대의 후손들에게 이르러 소멸되었을 리는
더욱 없다. 어딘가에 잠재되어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이 능력을
다시 계발하는 것이 현대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근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夷와 仁"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저력을 찾아보기 위해서 우리 민족의 원형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민족은 고대 동북 아시아에 살고 있었던 夷族의 후예이다. 그러므로 이족의 문화와 그 문화의 성격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민족 문화의 원형을 이해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을 지칭하는 고대의 용어는 이(夷)이다. 이(夷)의 의미는 인(人)이며, 인(仁)이다. 이(夷)와
인(人)과 인(仁)이 같은 의미로 통용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인(人)은 원래 사람이라는
보통명사가 아니라 동방에 사는 이족(夷族)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였다. 인(人)이 이족을 지칭하는 고유명
사였다면 이(夷)와 인(仁)은 이 인(人)에서 파생된 별명으로 보아야 한다. 이(夷)는 인(人)이 키가 크고
활을 잘 쏘기 때문에 크다는 뜻의 대(大)와 활을 의미하는 궁(弓)을 합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므로
이(夷)란 '키큰 활쟁이'란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또 인(仁)은 인(人)과 이(二)의 합체어인 점에서
본다면 '두 사람이 늘 한사람처럼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인(仁)은
공자의 핵심 사상이 될 정도로 심오한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다시 말하면 유학사상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는
인(仁)은 바로 우리 조상인 이족의 문화를 대변한 것이다.
따라서 이족(夷族)의 문화와 공자의 인(仁)의 사상을 이해한다면,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족의 인(仁)의 문화의 내용은 무엇일까?

우리 주의

한국인들은 남과 나를 각각의 개별자로 보지 않고 연결된 하나의 존재로 여기는 정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서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우리 주의'이다. 남과 내가 연결된 하나의 존재라면 남과
나는 더 이상 구별된 타인이 아니라 '우리'로 전환된다.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에게 말할 때, '우리 집'에
가자, '우리 부모'를 만나자 등, '나'를 '우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언어 습관은 남과 내가
하나로 연결된 존재라는 한국적 정서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말들은 외국어로는 적절하게
번역할 수 없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뜻이 통하지 않고, '우리'를 '나'로 바꾸어 번역하면 의미가 달라진다.
남과 나를 '우리'로 표현하는 이 정서는 한국인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이 고유
정서가 한국인의 정서 속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면, 이 정서는 바로 이족(夷族)이 갖고 있던 본래의 정서로
볼 수 있다. 왜냐 하면 깊은 내면에 있는 정서야말로 가장 오래된 원형의 정서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우리주의'에서 나타나는 기본 정서는 고독을 싫어하고 이별을 싫어하는 정서이다. 이러한 정서는
남과 경쟁하고 이별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갈등을 야기한다. 한국인은 분리하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한국인의 고유한 정서는 그 자체가 장점으로 발휘될 수도 있고 단점으로 발휘될 수도 있다. 그 장점으로
발휘되는 예는 인도주의 정신,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정신 등이고 단점으로 발휘되는 예는
의타주의, 자기 중심주의, 획일주의 등이다.

인도주의 정신과 다양성

한국인의 '우리 주의'는 남을 자신처럼 생각하고 사랑하는 고결한 인도주의 정신으로 발전할 수 있다.
공자는 이러한 정신을 이상적인 것으로 상정하고 이를 인(仁)사상으로 정리하였다. 이 인(仁)은 본래
이족(夷族)의 정서가 갖는 긍정적인 측면이 강화되어 나타난 경우를 표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이 '우리 주의'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사람은 개인적 자아를 초월할 수 있다. 그리하여 남이 잘되고,
나라가 잘되고, 세계가 평화롭게 되는 것을 자신이 잘되는 것처럼 좋아하고 행복해 할 수 있다. 나아가
남과 나라의 발전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기꺼이 살신성인(殺身成人)의 자세로 자신을 희생시킬 수 있다.
한국인의 우리 주의가 고결한 인도주의적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면 우리 사회는 개성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인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남에게 인정받는 신바람나는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신바람나는 분위기가 되면 한국인은 무서운 능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정서가 단점으로 나타나면 이와 반대로 의타주의와 획일주의가 만연하는 피곤한 사회가
된다.남과 자신을 하나로 생각하는 한국인의 정서가 '너의 것이 나의 것'이라는 논리로 나타나면 의타주의가
된다. 즉 남의 것이 나의 것이기 때문에 남의 것으로 내가 득을 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의타주의이다. 우리
속담에 '가장 맛있는 술은 공짜술이다'라든지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은 이를 설명해 주는 말이기도 하다.
남과 나를 하나로 보는 '우리주의'가 저급한 수준이 되면 현실적으로 남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획일주의로 나타날 수 있다. 획일주의적 사고를 가진 사람을 상관으로 모시게 되면 몹시 피곤하다.
모든 것을 그 상관 중심으로 조정하고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퇴근하지 않고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퇴근하기 어렵다. 회의할 때에도 그와 다른 의견을 제출하기 힘들다. 함께 먹거나 마시는 경우에도 그보다
더 비싼 것을 먹거나 마시면 괘씸죄에 걸린다. 그래서 늘 상관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삶이 피곤해진다.
이상의 한국적 정서에서 보면 한국이 발전할 수 있는 근본 방안은 저절로 찾아진다. 한국인에게 나타날 수
있는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위대한 문화의 소유자인 한국인은 다시 신바람을
일으킬 것이다.
한국인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근본방법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정신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 중에 하나가 한국인에게 수양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수양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경전(經典) 읽기가 으뜸이다. 그러므로 우선 우리사회에 경전을 읽는 풍토가 일반화되면 그 때에야 비로소
한국의 밝은 장래가 약속될 것이다.
한국인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근본방법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정신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 중에 하나가 한국인에게 수양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2001년 여름호 병무지     
통권 제 48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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