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 통권51호 | 2002 여름호
자유만으로 자유를 지킬 수 없다 / 임광규 변호사
 

아이콘상품선전을 하는데 좋은 상표나 멋있는 이름을 등록하면 물건이 잘 팔린다. 그래서 제조업자들은 선출원(先出願)을 하려고 애쓴다.
특이한 사상이나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우선 좋은 이름을 먼저 쓰기 시작하면서 여론을 주도(主導)하려고 운동을 벌이는 현상은 특히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매스미디어(massmedia)를 활용하여 온 혁명운동가들의 비결이기도 하다. 『진보』적 지식인이 큰소리로 『인민민주주의』의 깃발을 높이 든 혁명운동가들이 권력을 잡은 나라는 예외없이 인민들이 굶주리고 억압받는 『후진(後進)』 사회로 변모하고 말았다.
벌써 기원전 5세기말에 공자가 교묘한 말과 꾸민 색채는 거의 바르지 않다(巧言令色 鮮矣仁)고 가르친 것은 오늘에도 그대로 유효한 상식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良心的 兵役拒否者)』라는 표현은 원래 conscientious objector를 지칭한 말인데 정확하게는 『신념상 병역반대자(信念上 兵役反對者)』로 번역해야 맞다. conscientia(라틴)에서 유래한 conscience(영어)는 자각한다는 뜻이고 Gewissen(독일어)은 안다(wissen)는 뜻이다. conscience는 good conscience(gutes Gewissen)이 있고 evil conscience(boeses Gewissen)이 있다.
집총(執銃)을 안한다는 이유를 들어 전투병역을 면제받으려 하면서 집총만큼 위험한 전투 중의 위생병으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것도 기피한다면, 이 신념은『좋은 신념』이 아니고 『나쁜 신념』인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용어를 먼저 쓴다고 하여,『양심적(良心的)』이라는 긍정을 전제로 그 논리를 받아주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아이콘삽화 병역은 나라공동체를 지키기 위하여 성년에 이른 우리의 젊은 아들들이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전쟁에 참가하라는 나라공동체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다.
Carl von Clausewitz는 이렇게 쓰고 있다. 『전쟁이란 대규모의 결투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결투자는 상대방을 자기의 의지에 굴복시켜 다시는 대항을 못하게 만들 목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전쟁과 같이 위험한 사태에 처하여 자비심에서 나오는 실책이야말로 가장 나쁜 것이다. 전쟁논리 가운데로 적당주의를 끌어들이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자비심의 실책』이나 『적당주의 전쟁논리』가 민족의 자유상실, 민족 자체의 소멸을 가져 온 역사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지식인들이 병역을 가타부타 말하는 것은 넌센스이다.
우리 공동체의 존립기반인 전쟁전투력에서 이탈하면서 대한민국 공동체의 자유와 변영에 참여할 자격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염치없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멋있는 용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신념에 의하여 전쟁터 살인을 반대하는 것이 4,700만 공동체의 붕괴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고 해서, 심지어 전쟁터에서 총드는 대신 생명을 걸고 부상당한 대한민국 용사들을 구출하는 위생병 주특기도 싫다는 것이 4,700만 인권의 상실보다 더 가치 있다고 믿는다고 해서, 그러한 병역기피자(兵役忌避者)에게 대한민국이 제재를 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있다면 그들은 4,700만 공동체의 인권과 자유가 공짜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콘1594유성룡은 『징비록(懲毖錄)』에서 『적의 칼날과 방화(放火)의 해를 입어 천지가 폐허되고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거의 다 굶어죽어 버렸다. 어린아이가 죽은 어미의 젖을 빨고 있는 것을 가엾게 본 외국군사가 군중(軍中)에서 길렀다』, 『6월에 진주성이 8일만에 함락하였는데 우리 군민(軍民) 6만명이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개와 닭도 남지 않았다』고 쓰고 있다.
이것이 전쟁이다. 그 10년 전 주자학원리로 백성을 편하게 해주자는 편안주의신념(便安主義信念) 또는 편안주의양심(便安主義良心)에 현혹되었던 유성룡 본인이 이이(李珥)의 10만양병 주장에 반대하였음을 후회하였다.
38년 전에 끝난 임진난에 지쳐있는 상태에서 전쟁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믿음대신,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신념 또는 양심을 가진 선조의 명분주의자(名分主義者)들은 나라공동체를 지키는데 아주 소홀하였다.
1636년 강화도를 점령하고 남한산성을 포위한 여진족(淸)도 추위에 떨고 병참공급에 힘들어 하는 대치상황 속에서 우리 근왕군(勤王軍)은 여주에서 벌벌떨고 주저앉아 있는 사이 우리나라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1950년 6월의 기습남침을 미리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수많은 애국자들이 살육당하고 납치되어간 것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진정 자유와 인권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1861년 A. 링컨은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 전쟁이 나쁘다고 떠드는 발티모아 대표들에게 『신사숙녀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조건도 좋으니 평화를 지키라고 합니다. 유혈의 무서움만 지적합니다. 적군이 진격해 오는데 막아놓을 생각은 안해요』라고 맞섰다. 그리고 링컨은 북군을 지휘하여 전쟁을 이끌어 갔다.

아이콘13세기그리스도교 신학자인 성토마스아퀴나스는 정당한 전쟁(正當한 戰爭)과 불의한 전쟁(不義한 戰爭)을 구분하였다.
1940년 수상취임연설에서 처칠은 독일침략군에 대한『문명을 위한 전쟁』에서 자기는 눈물과 고생밖에 국민에게 드릴 게 없다고 실토하였다.
1950년 공산주의자들의 남침을 당한 이승만대통령은 그 반격전을 『우리의 생존을 위한 전쟁』이라고 명명(命名)하였다. 전쟁과 병역은 모두 나쁘다는 가치중립주의자(價値中立主義者)들은 자유와 정의와 문명과 생존을 누리고 싶다고 이야기해서는 안된다.
독일과 일본은 자기들의 수차례 전쟁이 정당하지 않았고, 자유와 문명과 다른 민족의 생존을 해(害)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독일이 병역의 『신념기피(信念忌避)』를 법률상 인정한 것은 양심의 반성이었고, 항상 침략전쟁을 일으켜 온 강자(强者)의 겸손한 사치(奢侈)이다.
일본의 평화헌법 역시 바다로 안전하게 둘러싸여 있는데도 인접나라를 침략하여온 역사의 업보(業報)이다.
영국이나 미국은 해협(海峽)과 대양(大洋)으로 이격(離隔)되어온 전통에서도 전쟁이 가까워오면 지원제에서 징병제로 전환한다. 전시에는 병역의 『신념기피자(conscientious objector)를 징병위원회에서 아주 엄격하게 심사하여 억제하고 있으며 그 판례가 계속 축적되어오고 있다. 제멋대로 『아! 나는 양심상 병역거부한다』하면 『아! 그렇소? 당신은 병역의무면제 해준다』 따위가 아니다.
스위스는 수백년간 침략을 받은 일도 없는데 단지 강대국이 인접해 있다는 것 한가지만 가지고 자립과 독립의지를 지키려고 철저한 징병개병주의(徵兵皆兵主義)로 나가고 있다.
우리는 강대국에게 유린되어 여러차례 굴복한 비참한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침략자에게 선조들과 부모들이 어육(魚肉)이 되어왔고, 심지어 이데올로기 때문에 동족의 남침으로 공동체를 지키는 공직자, 애국자들이 학살된 쓰라린 이력서를 지니고 있다. 더구나 지금도 외국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의 사활적안보(死活的安保)를 지키는데 참여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역의 신념상 기피를 입법화하자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이 있다.
신념체계와 법질서는 역사현실에 터잡아야 한다. 그 시대의 의견선도자들(opinion leaders)이 역사현실을 망각한 그런 나라와 그런 민족은 다 무너지고 소멸되어 온 것이 반복하여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아이콘우리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내심적(內心的)으로 양심을 형성(形成)하고 양심을 결정(決定)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보장한다. 그러나 외부적(外部的)으로 양심을 실현(實現)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보장된다. 양심을 외부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나라의 안전(安全)을 해하거나 나라 안전에 지켜야 할 의무를 기피(忌避)하거나 반대(反對)하는 것은 4,700만의 인권과 자유를 해하는 것이어서 제재를 받는다.
‘내일 군지휘관회의장을 폭파할 준비를 하는 간첩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고 팔장끼는 것 같은 무책임은 국가보안법 제10조 위반이며 양심의 외부적 의무불이행이어서 제재를 받아야 한다.’ ‘종교를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은 양심의 외부적 실현이므로 제재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헌법재판소와 우리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다.
『정당한 전쟁』, 『문명을 위한 전쟁』, 『생존을 위한 전쟁』은 4,700만이 원하면 하고, 원하지 않으면 안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방의 의무를 진다』는 우리 헌법 제39조는 우리 역사현실에 터잡은 것이다. 4,700만 인권과 자유를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적에 대하여 『정당한 전쟁』, 『문명을 위한 전쟁』, 『생존을 위한 전쟁』은 피할 수가 없다.
1966년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8조 3항 c.(ii)는 『신념상 병역반대가 인정되고 있는 국가』에서는 강제노역을 시킬 수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하여 지원제 아닌 징집제를 시행하는 국가에서 『신념상 병역반대』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위 국제규약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위 국제규약 제18조는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병역거부를 다루지는 않고 있다.

1949년 5월 23일 제정한 독일연방공화국 헌법 제4조 제3항이 『자기 신념에 반하여 무기를 드는 전쟁근무를 강요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것은 독일이 주변국가에 대하여 침략을 자행해 온 역사현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연방헌법 제18조는 제1항에서 『모든 스위스인은 병역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스위스연방의 병역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거나 불구로 될 때에는 연방에 도움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제2항)』 『병기(兵器)는 무상으로 지급받고 연방법률조건 아래 군인수중에 보관한다(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영국은 1차대전 2차대전이 발발할 때마다 징집제를 실시하였고 1948년 국민병역법(National Service Act)에서 신념상 병역기피규정을 두었으나 엄격한 조건을 심사하여 함부로 이 규정에 의한 병역기피를 못하게 하였다.

미국의 경우 1943년 대법원 판례(Bowles. v. U.S. 319. U.S 33)는 신념상의 병역기피를 거부한 예이고, 1971년 미국 대법원 판결(Musser v. U.S. 414 U.S 31)은 신념상 병역기피자의 상고에 대하여 그 성실성이 결여되었다(his claim lack sincerity)는 이유로 병역기피자를 처벌하고 있다.
1970년 미국 대법원의 판결(Mulloy. v. U.S. 398 U.S 410, 418)은 징병위원회(Selective Service Board)가 15분간만 접견하고 병역면제한 사안을 놓고 재심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요컨대 판례국가인 영국과 미국은 사실상 이러저러한 이유를 붙여 징병에서 회피하려는 이유를 거의 들어주지 않는 판례를 확립하고 있다.
1952년 미국의 R. H. Jackson 대법관은『자유만으로 자유를 지킬 수 없다』고 판결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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