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 통권51호 | 2002 여름호
2002 한일월드컵 / 엄기은 수필가
  월드컵 4강!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다. 5회 연속 진출이라는 행진 끝에, 마침내 동방의 작은 나라 한국이 일을 내고 말았다.
월드컵 첫승이 소원 아니었던가. 16강 진입이 염원 아니었던가. 그런 우리가 날고 긴다는 포르투갈을 제치고 이탈리아를 꺾고 스페인을 침몰시키며 파죽지세로 4강 고지에 올라섰다. 2002년 6월 한달, 메가톤급 환희를 안겨준 2002한일월드컵에 우리는 몰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대한민국은 하나가 되었다.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오 필승 코리아, 오 필승 코리아.”
지구촌을 뒤흔든 폭발적인 에너지. 주술처럼 입 안에서 절로 나오고, 환청인 듯 하루종일 귀에서 울려대던 응원 구호와 박수 소리. 폴란드 전에 50여만 명으로 시작된 장외응원인파는 준결승전이던 독일전에서는 최고조로 달아올라 700여만 명이 거리 응원에 나섰다. 잠재되어 있던 신명과 자부심과 애국심이 축구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밖으로,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신화였다. 전설이었다.
우리가 이토록 태극기와 친했던 적이 있었던가. 태극기로 탱크탑이나 치마, 셔츠와 모자를 만들어 몸에 둘렀고, 붉은 악마의 초대형 태극기는 물론 한국 경기가 있는 날은 집에 태극기를 다는 사람도 많았다. 피자집 중국집 오토바이들까지 태극기를 달고 경적을 울리며 신바람을 돋웠다. 막대 풍선과 물통, 붉은 티셔츠에 스카프, 두건과 폭죽, 호루라기 등 응원도구도 다양했다. 훼이스 페인팅은 기본이었고 바디 페인팅도 만만치 않았다.
온 나라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온 국민이 축구 박사가 되었고 해설가가 되었으며 기꺼이 12번째 태극전사 붉은 악마가 되었다. 깜짝 이벤트를 기획했으며, 새로운 패션을 창출해냈고, 극적 드라마의 주인공 역할을 충분히 즐겼다. 선수들이 선전하는 장면은 수십 번을 보고 또 봐도 물릴 줄을 몰랐다. 야구에서 9회말 2사 만루의 역전승이 극적 환희를 주 듯, 미국전 포르투갈전 이탈리아전에서는 꺼져가던 불씨를 살려내 듯 꼭 후반전 끝날 무렵 골을 넣어 기사회생의 솟구쳐 오르는 기쁨을 무한정 배가시켰다.

월드컵 응원 장면4강을 확정짓던 날, 우리는 정말 기뻤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다시 태어나도 대한민국에 태어나고 싶다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으며, 4강에 오른 후 실시한 한 갤럽 조사에 따르면 월드컵 때문에 행복을 느낀다는 국민이 95%가 넘었다고 한다.
약소 국가의 설움을 떠안으며 밖에 나가 힘들게 살았던 해외동포들도 기를 활짝 펴고 신명잔치에 동참했다. 예전에는 코리언이라고 해야 알아들었던 외국인도, 이제는 ‘대-한민국’하면 벌써 고개를 끄덕인다고 했다. 응원열기에 반한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며 부러움을 전해왔다. 1,000만 장 정도가 팔린 ‘Be The Reds’ 붉은 티는 세계인이 받고 싶어하는 선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많은 외신이 보도했 듯 2002월드컵은 한국민을 위한 한판 축제 무대였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즈는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초점을 받은 것은 축구경기가 아니라 ‘한국민’이라고 했을까.
그동안 우리는 너무 몰랐다. 우리가 조국 대한민국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우리가 이토록 자랑스러운 사람들인지, 뭉쳐서 함께 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를.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16강을 목표로 삼았던 우리에게 4승이란 거대한 선물을 안긴 것부터가 그렇다. 나중엔 외국인들이 두려움까지 느꼈다던 우리의 응원도 만약 16강 정도에서 그쳤다면 단지 호기심이나 경이감으로 끝났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백의민족이라 자처하는 우리는 얼마나 선량한 사람들인가.
월드컵 응원장면만약 장외응원에서 서구처럼 폭력적 사태가 일어났다면 남녀노소가 다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새로운 응원문화의 그 화려한 세계 무대 데뷔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 열정적이지만 폭력적인 홀리건, 평화적이지만 재미가 덜한 롤리건, 그 둘의 장점만 모아놓은 응원, 역동적이면서도 재미있고 평화적인 ‘Red Devil’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이름이.

이번 월드컵은 역대 월드컵에 비해 크게 다른 두 가지 면에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나는 5개 대륙에서 골고루 8강에 오름으로써, 축구 변방국이라 생각하던 많은 나라들이 좀더 노력하면 자신들도 월드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당연히 응원문화이다. 외국인들이 붉은 티를 입고 ‘대-한민국’을 거리낌없이 연호했듯 월드컵이 승패를 떠나 모두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핵 속에 우리가 있었다.
필자는 8년전 미국 월드컵이 끝난 후 꼭 이 자리에서(병무 28호, 1994) ‘2002월드컵은 한국 유치가 성사되어 한국 축구의 일대 도약을 소망해 본다.’라고 썼었다. 하지만 그런 필자도 이렇게까지 도약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즐거움을 준 축구관계자 여러분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일해온 많은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꽃같은 젊음을 바친 서해교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역사를 위해 앞을 내다보아야 할 때이다. 2002년도 월드컵이 끝났다고 해서 월드컵의 역사가 끝난 것이 아니며, 축구가 끝난 것은 더욱 아니다. 붉은 악마의 마지막 카드색션 ‘CU@K리그’처럼 우리는 지속적으로 축구 발전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비인기종목에서도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최선을 다하는 선수와 관계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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