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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지노는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124㎞ 지점에 있는 광활한 평원지대로,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가 러시아를 침입했을 때 치열하게
교전을 벌린 역사적인 장소이다.
1812년 8월 26일 이른 아침, 보로지노 평원에서는 13만5천명의 나폴레옹 군과 12만명의 러시아
군이 결전을 벌였다. 15시간의 전투 끝에 나폴레옹 군은 5만8천명, 러시아 군은 4만 4천명이
전사하였다. 서로가 큰 피해를 입은 전투였지만 나폴레옹 군대의 기세는 꺽을 수 없어 쿠트조프 등
러시아 장군들은 ‘모스크바를 잃어도 러시아를 잃을 수 없다’라는 말과 함께 모스크바를 포기하고 후퇴했다.
이어 모스크바를 점령한 프랑스 군대는 곳곳에서 파괴와 약탈을 했으나 이렇다할 전과를 거두지 못한
채 퇴각해야만 했다. 역사적인 고도인 모스크바는 보로지노 전투를 통해 도시의 3분의 2가 완전히
파괴되는 등 거의 폐허가 되었다. 이러한 모스크바가 제 모습을 갖춘 것은 소비에트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수도를 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이전하면서 부터이다. 현재 보로지노 일대는 자연보호지역이 되었고,
당시를 회상하게하는 보로지노 전투 파노라마관, 러시아의 쿠트조프 장군이 나폴레옹 군대를 무찌른 것을
기념한 개선문 등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도 보로지노 지역은 다시 전쟁터가 되었지만 그때도
용맹한 러시아 군대는 나치 독일군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보로지노 전투 파노라마관은 모스크바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폴레옹 군대에 대한 전승 150주년을
기념하여 1962년 10월에 건립했다. 이곳에는 당시 격렬했던 보로지노 전투를 묘사한 길이 115m,
높이 15m의 거대한 파노라마가 전시되어 있다. 세밀하게 그려진 전투 장면과 지휘관의 고뇌에 찬
모습, 그리고 전투로 인해 불타는 집과 파괴된 대포들이 당시를 회상하게 한다
파노라마관 내부에는 전투에 참여한 영웅들의 초상화, 군복, 총검류 등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러시아
군대를 통솔한 쿠트조프 장군과 바쿠라치온 기념비, 35연대의 묘비도 같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 안쪽에는
러시아 군의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는 쿠트조프의 오두막과 이곳에서 목숨을 바친 장병들을 기리는 오벨리스크가
서 있다. 세계적인 문호인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집필하기 위하여 보로지노 평원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이 있다.
러시아를 침공하여 이렇다할 저항없이 전진만을 하던 프랑스 군대에게 처음으로 일격을 가한 보로지노
전투는 러시아와 프랑스 모두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치열했던 전투가 끝난 후, 서로 대승을 거둔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자기 쪽에도 큰 피해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다. 보로지노 전투 후 프랑스
군대는 모스크바를 점령하여 승리한 전쟁처럼 생각되었으나, 러시아 특유의 혹독한 추위와 끈질긴 러시아
군대의 공격과 초토화 작전 등으로 50만명에 이르던 프랑스 침입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는 패전군이
되었다. 또한 자신들의 수도인 파리조차 러시아 군대에게 짓밟히는 수모를 겪게 된다.
보로지노
전투에 참가한 프랑스 군대는 프랑스 군인은 물론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 등에서 참전한 군인들로
연합되어 있었다. 러시아로 들어온 후 전투가 없어 상대방의 대포나 군기조차 빼앗지 못하고 전진만
하다가 보로지노 평원에서 러시아 군대와 접전을 벌린 프랑스 군대는 그야말로 굶주린 사자와 같았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 역시 만만하지 않아 예상 외로 큰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보이나 강이 꼴로챠 강과 합류되는 지점에 있는 평야는 가장 전투가 치열했던 것으로 양쪽에서 쏟아대는
대포 포탄으로 곳곳에 뿌연 포연이 피어오르고 총검과 군인들의 아우성으로 피범벅이 된 격전지였다.
높은 곳에서 전투를 바라보던 나폴레옹은 이전에 겪었던 전투와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8시간 동안이나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이 전쟁은 명백한 패전이 될 것이며, 잘못하면
프랑스 군대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부하 장교들이 아직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근위병들을 보내달라고 했을 때 나폴레옹은 판단력의 부족 때문인지, 다른 생각 때문인지 몰라도
그 제안을 거부했다고 한다.
러시아 군대의 총사령관인 쿠트조프는 심리전에 능했던 장군이었다. 그는 군대 전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총사령관의 명령도 아니고 군대가 점령하고 있는 장소나 대포와 군인 수도 아닌 ‘사기’라고 하는,
종잡을 수 없는 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쿠트조프 장군은 지휘부에서 프랑스 군대의 러시아
군 좌익에 대한 몇 차례의 공격을 무사히 막았고 중앙부는 보로지노 이상 진격하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
기병대는 프랑스군을 좌익에서 성공적으로 공격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쿠트조프 장군은 다음날 총공격을
명한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당시 나폴레옹이 콧물 감기를 앓지 않았더라면 현명한 결정을 하여 그처럼 많은 사상자를
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서는 그 결과 러시아는 오래 전에 멸망되어 세계지도가 바뀌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 총사령관의 콧물 감기로 인해 역사가 뒤집혀지는 일이 생길 것인가(?)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은 나폴레옹을 영웅이라고 이야기 한다. 사실 그는 평생 네시간 이상을 자본 일이 없었으며,
작은 키를 2피트나 크게 보이도록 모자를 고안할 정도(나폴레옹모자)로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가진
남자였다. 그는 엘바섬에 귀양가서도 수백그루의 뽕나무를 심는 등 양잠을 장려하고 작업복 차림으로
농학과 식물학 연구에 몰두하고 밭 갈고 소를 몰아 주위사람들을 감복시켰다.
그러나 그의 이런 영웅적 면모와 행적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이 자신과 그의 조국 프랑스을 위해 벌인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여러 나라에서 엄청난 재산상의 손실을 감안해 볼 때
역사에서 그런 인물은 두번 다시 등장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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