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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생활을 하다보면 이리저리
이동 근무를 하기 마련이다. 특히 병무청 직원은 시·도지역간 이동이 잦고, 그 중에서도 광주·전남지방청
연고 직원들은 - 지금은 거의 해소되었지만 - 더욱 빈번하게 이동 근무를 하였다. 왜냐하면 연고지청
정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연고 직원 수가 너무 많아 교대근무가 불가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고참급 팀장 이상은 통산 재직기간의 절반 이상을 객지에서 근무하게 된다. 객지 근무자는 가족과 떨어져
살게되어 경제적 사정, 자녀교육 문제, 건강관리 등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이곳
저곳에서 보고, 듣고, 겪은 애환들이 있어 지난 날의 다정한 추억거리가 되기도 한다.
1962년
국방부 산하에 시·도 병무청을 두고 종전의 병사구 사령부의 군인력이 일반직으로 교체되는 60년대말부터
지방청간 대폭적이고 비정한 전보인사의 악순환은 시작되었다. 장기적인 인사정책 없이 마구잡이로 인력을
배치한 결과 잘못 끼워진 단추가 두고두고 문제가 되듯, 연고지 근무기간은 갈수록 짧아지고 비연고지
청에서 얼마 동안을 근무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이 이어졌다. 너무 자주 옮기다 보니
일일이 친지들에게 오간다는 인사도 할 수 없고, 승진도 타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가족과
같이 이사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있거나 자녀 학교문제 등으로 이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 80년대 초 전보 기준이 마련되어 연고지와 비연고지 근무기간을 정함으로써 연고지와 비연고지
근무기간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인사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90년대 중반이후
연령정년 등으로 대거 퇴직하면서 상위직은 공동화 현상마저 초래된 바 있다. 요즈음은 하위직 남녀직원의
성비에 심한 불균형 현상이 또 하나의 인사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는 실정이다. 교통이 불편하고 먼
곳에 근무하게 되면 공휴일에 집에 다니기가 곤란하여 자주 산을 찾아 하루를 보내곤 했다. 樂山樂水의
경지일 수는 없고, 지루하고 암울한 현실을 떠나 하루 종일 쏘다니다 보니 산을 좋아하게 되었다.
쉬운 길, 험난한 길, 오르막 내리막 인생행로 같은 산길을 고집스럽게 걸으며 많은 것을 생각한다.
산행은 혼자도 좋고, 언제, 어디든지, 누구하고도 자유스럽고 부담없이 갈 수 있어 客苦를 이기는
데는 가장 좋은 레포츠다. 자연의 형태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숨막히는 도시의 콘크리트 문화 속에
살다가 그래도 태고의 자취가 남아있는 산하를 땀흘리며 넘나들고 나면 그동안 심신에 쌓인 스트레스는
해소되고 다음 한 주 지내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좋은 분위기에서 기분 좋게 술을 마시거나 신나는
놀이를 한다 할지라도 다음 날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땀 흘리며 고된 산행을 하고 난 다음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힘든 운동이나 노동이 건강과 생산의 보람을 안겨주는 이치일까? 인간의 몸과 마음은
참으로 심오한 역학관계가 상호 작용하고 있다.
큰 산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큰 계곡이 형성되어 큰 강을 이룬다. “쇼양강 나린 믈이 어디로 든단
말고.”와 같이 우리 나라 인구의 태반이 살고 있는 서울 등 수도권의 물 공급은 강원도와 경기도에
큰 산들이 있어 가능하고 천만이 넘는 서울시민의 허파 역할은 주변의 많은 산림들이 하고 있다. 만학천봉에
기화요초, 녹음방초, 울울창창, 기암절벽과 만산홍엽, 형형색색, 낙목공산, 은세계 등 옛부터 계절따라
나타내는 수식어들이 많지만 갈 때마다 새롭게 펼쳐지는 무궁무진한 자연의 抒情을 어찌 말과 글로써
다 표현할 수 있으랴! 지구가 생기고 오랜 지각 변동을 거쳐 만들어진 산봉우리와 모진 풍상을 겪으며
다듬어진 암석들 사이로 끈질기게 생명의 뿌리를 박고 얼기설기 구부러지고 비틀어지며 자란 나무가 더욱
아름답고 오가는 길손의 손잡이와 쉼터를 제공하여 주고 있다. 비록 현실이 어려우나 올곧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삶을 보는 것 같아 더욱 愛情이 간다.
산행할 때는 그 산과 문화재에 얽힌 역사를 상고하면서 많은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장엄하게 전개되는
지리산과 한.라산 등의 능선과 계곡. 옛 선현 고승들의 득도의 길로, 때론 항몽항일의 의병 활동의
무대로, 해방 후 6.25 전후에는 유격대의 본거지로 모든 것을 감싸 안아 왔던 곳이다. 처절한
동족상잔으로 꽃다운 나이에 숨져간 피아의 고혼들... 과연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끝까지 목숨을 버려야
했던가! 산길 디딤돌들과 고목 한 주 한 주에 그들이 남기고 간 서러운 哀情이 배어있다. 당시에는
죽은 이의 비목 하나도 꽂아줄 수 없었지만 이젠 민족애의 따뜻한 정으로 격전지 곳곳에 고혼들의 위령비라도
세워 명복을 빌어 주고 다시는 이런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후세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전국 각지에는 수많은 옛 성터가 남아있다. 도읍지였던 도성과 지방 관청이 있던 읍성 그리고 유사시
이동하여 항전하던 산성 등 규모가 크고 유명한 성이 있는가 하면 작고 이름없는 성터도 많다. 북한산성은
임진·병자 전란을 겪고 나서 오랜 찬반 논란 끝에 숙종조에 이르러서야 놀랍게도 6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축성하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돌 하나 하나에 호국의지와 민초들의 아픔이 새겨져 있는 것 같아 선조들에
대한 慕情이 간절하다. 조선 멸망과 함께 민족의 혼과 얼이 담긴 문화유적이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다행히 일부 산성을 복원하고 있으나 원형과는 거리가 먼 느낌이다. 북한산성은 원래 그 산에 있는
크고 작은 돌을 수공으로 깎아 쌓았기때문에 지금까지 남아있는 부분을 보면 주위 환경과 잘 조화되고
모자이크 같이 아름다움이 있으나 복원되고 있는 성은 외부에서 화강암을 기계로 정교하게 깎아 시멘트까지
사용하여 쌓고 있어 도심의 현대 건축물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나는 지금까지 본청과 여러 지방청 등을 20여회 숨가쁘게 옮겨 다니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보람도
있었다. 가는 곳마다 따뜻이 맞아 주는 직원들과 객지에서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객고를 함께 달래던
동료들의 友情이 있어 위안이 되었으며 진심으로 감사한다. 역사는 반복하면서도 발전한다. 지난 일을
거울 삼아 다시는 전철을 밟지 않는다면 발전할 것이고, 세월이 가고 사람이 바뀌면서 역사의 교훈을
망각해 버린다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병무청이 비록 조직은 작지만 장기적인 비젼을 가지고
인사와 병역정책을 수립하여 이를 성실하게 집행해 나간다면 우리 청에 몸담고 있는 모든 직원들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신명나게 근무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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