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상한 말이지만...
이 자리에 이러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말처럼 솔직하면서 대책 없는 말은 없을 것 같다. 공무원 시험을 오래 준비했지만 공무원이라는 직업만 얻으려고 했지 정확히 어느 소속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부처 배정을 하러 과천 정부청사에 갔을 때만 해도 사실 내가 병무청을 선택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병무청으로 와서 선배님들이 다른 부처도 많았을 텐데 어쩌다 병무청을 선택했냐고 물어보면 대답으로 머리를 한 번 긁적일 정도로 난 그렇게 얼결에 병무청 소속의 공무원이 됐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기를 오랫동안 고대해 왔지만 공무원들이 무사안일하고 복지부동한 집단으로 여겨지고 또 그런 삶을 살기 위하여 공무원 준비를 한다는 주위 친구들을 봤을 때 많은 좌절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병무청은 달랐다. 작년 12월 11일 임명장을 받으러 본청을 갔을 때 청장님이 직접 임명장을 일일이 직접 수여해주신 다는 말을 들었을 때 병무청하면 국방부의 이미지 군인의 이미지가 연상되어 매우 권위적일 것 같았는데 신규 직원을 위해 청장님이 직접 임명장을 수여한다니 그토록 갈망했던 소속감을 임명장 수여와 청장님의 악수로 제대로 느끼게 될 수 있었다.

마케팅의 기법 중에 내부고객도 고객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청장님과의 악수 한번으로 내부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병무청의 혁신마인드를 접할 수 있었다.

공감경영이라는 기업의 전략이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기업이 사원, 소비자, 사회 등으로 부터 공감을 얻어야만 발전을 할 수 있는 개념인데 내부고객의 위상을 깎아 내리는 기업은 결코 공감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한 점에서 내부고객인 직원들을 우수한 인재라고 인정해주고 자기 발전을 하도록 상시학습을 돕고 혁신을 독려하는 병무청은 내가 그간에 생각해왔던 공무원 집단과는 너무나 달랐다.

세상 모든 직업과 상황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병무청으로 부처배정을 받게 되고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소리가 나에게 잘 보이면 예비군 훈련을 빠질 수 있느냐, 나중에 자기 아들이 군복무를 편히 할 수 있도록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그땐 매우 호기롭게 그러겠노라고 웃으며 깔깔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말인지 안다.
이제는 내가 내 주위사람들에게는 “병무청 다니는 이현진”으로 통한다. 날 떠올리면 동시에 병무청을 떠올릴 것이고 병무청을 보면 날 떠올릴 것이다.
발령을 받고 일을 시작한 이후에 친한 친구라도 나는 절대 소소한 불평조차 털어놓지 않는다.
내 말 한마디가 누워서 침 뱉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초년생이다. 사회생활의 초년생이고 공직생활의 초년생이며 병무청의 초년생이다. 아직은 성취감을 느낄만한 그럴 듯한 임무도 없었고, 내 선택을 후회할 만한 절망감도 경험해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급하게 욕심낼 생각은 없고 하나씩 천천히 맛보고 싶다.

하지만 편한 생활만 추구하고 현실에 안착해버리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만 할 줄 아는 “착한 학생”보다는 의욕 있게 행동하는 “문제아(?)”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