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챙겨 넣고, 간단히 점검을 마친 뒤 주차장으로 나왔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고 겨울바람은 오늘따라 몹시 매섭다. ‘추워서 밖에도 못나가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겠구나...’ 갑자기 밀려오는 아이들 생각에 보고 싶은 마음은 배가 되고 집으로 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마음은 초조해져만 간다. 그런데 이런... 또 신호에 걸려버렸다. 아직 1km도 채 못간 것 같은데 벌써 신호만 네 번째다. 이쯤 되면 라디오에서 나오는 배철수 아저씨의 목소리도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도대체 신호는 언제 바뀌는 거야!’ 무심한 빨간 신호등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내 눈에, 옆 차선에 서있던 57번 버스에 부착된 커다란 버스광고가 눈에 띄었다. ‘07년 12월 에덴밸리 스키장 개장!’ 이제 경남권 사람들도 가까운 곳에서 스키를 즐길 수 있게 된단다.

‘스키..스키라....푸훗-’
문득 4년 전 겨울의 기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무주리조트. 내 평생 처음으로 스키를 타게 된 그 곳을 우리 2002 부산청 동기들과 함께 했다.
난생 처음 도시구경 가는 순박한 시골청년의 설레는 마음으로, 알뜰살뜰 열심히 모아둔 동기회비는 마치 ‘오늘을 위한 것이었노라’ 모두 탈탈 털어내어 토요일 오전업무는 대충 마무리하고, 부산역으로 모두 모여 여행사 관광버스에 올랐다.
스키장을 간다고는 해도 대부분이 무경험자였고 어느 한사람도 준비된 스키장비는 커녕 스키복조차 없었지만, 그런 것쯤 우리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과 1박2일 여행길에 올랐다는 것. 그 기분 좋은 흥분감 만으로도 우린 피렌체의 일몰보다 더 아름다울 법한 차창 밖의 노을을 바라볼 수 있었다.

휴일 고속도로라 버스는 한참을 가다 서다를 반복하더니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무주에 도착했다. 무주의 밤공기는 부산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못 될 만큼 “진짜 춥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스키용품 대여점에 잠깐 정차하여 모두 똑같은 디자인의 스키복을 대여 하고, 숙소로 이동을 했다. 숙소는 낭만적이고 아늑할 거란 기대와는 정반대로 따뜻한 물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말 그대로 허름한 민박집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유일한 스키 유경험자인 동기에게 간단한 스키동작들을 강습 받으며 내일 슬로프를 질주 할 우리 모습을 행복하게 상상하였고 그렇게 우리의 첫날밤(?)은 지나갔다.

아침이 밝아, 전날 대여한 스키복으로 모두 갈아입고 무주스키장으로 이동을 했다. 처음 만져보는 스키장비, 혼자 신기에는 힘든 커다란 스키신발,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우리가 간곳은 초급코스. 오랜 줄을 기다려서야 리프트에 오를 수 있었다. 리프트를 타고 발아래로 펼쳐지는 설경 감상에 빠져드는 것도 잠시, 리프트에서 내리는 것부터가 난제로 다가왔다.
조마조마하며 겨우 내려와 놓고서는, 내리다가 넘어지는 동기가 있으면 크게 놀려주기도 하였다. 다치지 않게 넘어지는 것, 그리고 넘어진 후 다시 일어나는 일. 이것이 제일 먼저 강습 받은 스키의 기본이라 했다. A자로 다리를 모으고 내려가는 동작을 대충 몇 번 따라 한 뒤 이쯤이야 하며 실전에 돌입했는데 나의 운동실력을 너무 자만했던 것일까? A자로 해보려고 해도 어느새 스키는 대책 없이 벌어져 있고, 이기지도 못할 가속도는 왜 그렇게 붙는 것인지. 절반은 구르고 절반은 미끄러지다 시피 하여 반나절이 지나서야 겨우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실력은 모두 도토리 키 재기여서 제 몸 하나 챙기기도 바빴을 텐데, 그 와중에도 보이지 않는 사람은 없는지, 누가 다치진 않았는지 서로서로의 위치와 컨디션을 꼼꼼히 체크하며 넘어진 동기 일으켜 세워주다 같이 굴러 넘어지기도 하고 내려오는 중 같은 스키복을 입은 서로를 마주칠 때마다 이산가족 상봉한 마냥 반갑게 불러대는 모습에서 동기사랑 나라사랑이라던 예전 대학선배의 말이 떠올라 추운날씨에도 마음만은 훈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