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언제나 그랬듯이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하며 보신각 종소리를 듣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이는 보신각 타종행사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어 보였다. 참여한 사람들의 상기된 모습들과 폭죽행사는 방안에 있는 나의 마음도 설레게 했다. 그러던 중 친구에게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그 친구도 새해를 맞이하는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의미하게 새해를 맞이할 수 없다며 무조건 떠나자는 것이었다.

대설주의보로 인해 밖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과연 우리가 이 눈길을 뚫고 해돋이를 무사히 보러갈 수 있을까란 걱정이 앞섰지만 추위를 무릅쓰고 환호성을 지르며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져 나도 모르게 오케이를 외쳤다. 갑작스런 제의에 머뭇거릴 시간도 없이 일출을 보기 위해 떠나야 했다. 새벽 2시 몇 명의 지인들과 포항에 있는 호미곶 일출을 보기 위해 출발했다. 한없이 내리는 눈도 우리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5시간을 정신없이 달려 포항에 도착했다.

밖은 아직도 캄캄했다. 조금을 더 달려 포항시가지로 들어섰을 때 어디선가 환한 불빛이 보였다. 모두 잠든 새벽 환하게 빛나고 있는 포항제철단지는 장관이었다. 하얀 연기를 내 품고 있는 굴뚝과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는 괜히 나를 숙연해지게 만들었다.

새해를 맞이한다고 모두들 가족,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새해 첫날 묵묵히 일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올해는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출을 보러가는 사람들로 인해 이미 도로는 차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동해가 보이는 어디쯤에 정차하고 잠깐 눈을 붙였다. 긴장하며 눈길을 달려온 탓인지 단숨에 잠으로 빠져들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들의 흥분된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밖은 이미 환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출렁이는 바닷가를 보았지만 해는 없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날씨가 흐려서인지 일출은 볼 수 없었다.

5시간을 달려왔는데 일출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속상했지만 탁 트인 바다와 넘실거리는 파도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밝아오는 2008년의 계획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올해 소망을 마음속으로 빌어보았다. 서운한 마음도 잠시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우리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사진도 찍고 소리도 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비록 일출과정은 보지 못했지만 저 멀리 유난히 밝게 떠있는 동해의 해를 보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는 길은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잠기도록 했다. 언제나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지난해보다는 좀 더 나은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란 기대에 들뜨게 된다.

잠시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고 지난해를 돌이켜봤다. 나에게 있어서 2007년은 평생 잊지 못할 한해였다.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병무청이란 낯선 곳에 발을 디뎠다. 머뭇거리며 병무청안으로 출근하던 내 모습이 떠올라 저절로 웃음이 났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해서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조차 불편해 했던 내가 이제는 민원인이 들어오면 밝게 미소를 지어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선배님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업무를 하나씩 파악해가면서 나에게 오는 민원인들도 나와 같은 심정으로 상담해 올 것이란 생각이 들어 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노력했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많지만 지난해 내가 지녔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더욱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2007년의 경험들을 밑거름으로 삼아 병무인으로서는 물론이고 나 자신을 위해 자아개발을 충실히 하여 2008년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는 한해가 되도록 설계 해 봐야겠다.

새해 첫날의 긴 여정을 마치며 오늘 빌었던 소망과 각오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좀 더 성숙해진 내 모습을 기대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