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되면 적어도 퇴직만은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그러나 공무원의 실상은 이러한 기대와는 사뭇 다른 듯하다. 지난 해 11월 중앙인사위원회가 48개 정부중앙부처 1~9급 공무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공무원 삶의 질 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공무원 중 절반 이상(50.2%)이 이민 의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조사 대상자 중 3분의 1이 실직 위험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하고 있어, ‘철밥통’이라는 외부의 인식과는 차이를 보였다. 잦은 초과근무와 야근, 여가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근무여건에 대한 만족도 또한 높지 않게 나타났다. 다시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면 공무원이 되겠다는 답은 55.7%로 나타났지만 조건만 좋다면 민간으로 옮기겠다는 응답도 60% 가까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결과를 보면 공무원도 그렇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불안한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열심히 일한다. 그것만이 자신이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고, 허투루 쓰는 시간이 없도록 시간을 분으로, 초로 쪼개어 사용한다. 야근은 필수이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것은 기본이다.
공직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아, 중앙공무원들의 일평균 초과근무시간이 2시간 20분이나 되며, 일 년동안 연가를 사용하는 일수는 여름휴가를 포함해서 겨우 6.5일에 불과하다. 직무성과계약제, 팀제, BSC 등 혁신과 평가, 경쟁과 성과 중심의 경쟁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이에 대한 압박감도 크다. 또한 높은 수준의 행정서비스와 공직사회 혁신을 가능케 하는 행정전문가에 대한 요구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일과 삶의 균형’이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21세기의 경쟁력은 창의력이다. 20세기 산업사회가 누가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고, 같은 일을 더 많이 하는가로 우열을 가렸다면,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는 누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가 즉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다르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쉬운 예로 ‘정보’에 대해 생각해보자.
정보화가 가속화되면서 개인 한 사람이 일 년에 만들어내는 정보가 9m가 된다고 한다. 이렇게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정보를 ‘열심히’ 모으는 것보다 그 잡다한 정보더미에서 꼭 필요한 정보를 ‘선별해 내 조합하는’ 능력 즉 다양한 관점에서 정보를 재창조하는 창의력이다. 심리학적으로 창의력이란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때, 그리고 자신의 삶을 조망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매일 야근하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면서, 심신은 자꾸 지쳐만 가는 상황에서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말이지 매우 힘든 일이다.

많은 조직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춘다고 하면 일에 쏟을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를 한다. 하루는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삶에 더 많은 시간을 쏟게 되면 일에 할당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분명 일과 삶의 균형은 승-패의 관계, 제로섬 게임이다.

그러나 시간이라는 양적인 개념으로 보지 않고, 효율성이라는 질적인 개념으로 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하루에 10시간 일하던 것을 13시간으로 늘렸다고 해서 일을 잘 했다고 말할 수 없다. 21세기는 양이 아닌 질이, 생산성보다는 효율성이 더욱 중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