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하는, 영화 ‘잉글리쉬 페이션트’, ‘양들의 침묵’, ‘Before Sunrise’ 그리고 최근 일본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삽입된 바 있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아름다움, 특히 주제곡인 아리아의 단순하면서도 명상적인 선율과 30개의 변주곡에 숨어있는 무한한 아름다움을 한번 맛보면 클래식에 문외한 이었던 사람이라도 클래식 음악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이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글렌 굴드(1981년 연주)

변주곡이란?
그 시대에 어느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선율들을 선곡하여 대위법으로 즉흥적인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하는 곡을 말한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으로 알려진 이 변주곡의 정식 제목은 『2단 건반이 딸린 클라비어쳄발로를 위한 아리아와 갖가지 변주』로써 바흐가 살던 드레스덴의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제를링크 백작이 자신의 불면증 치료를 위한 음악을 바흐에게 작곡해 줄 것을 요청하여 작곡되었고, 이 곡을 쳄발로 연주자인 테오필루스 골드베르그가 연주하여 붙여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13세였던 골드베르그가 이렇게 난해한 곡을 연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앞의 일화가 각색되어졌다는 의견도 있다.

이 곡은 장중하면서도 아름답고 명상적인 사라방드 스타일의 G장조 주제곡인 아리아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보르헤스)처럼 무한하게 뻗어가며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30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리아라고 이름 붙여진 G장조 4분의 4박자의 주제곡은 1725년에 작곡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전도연이 주연한 영화 ‘접속’의 Sound Track으로 사용되었던 Sarah Vaughan의『A Lover’s Concerto』가 바로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속에 포함된 미뉴에트이다.)에 실려 있는 사라방드에서 취해진 것이다.

이어지는 각각의 변주곡은 32마디의 저음부를 공유하면서 이것이 다양하게 변주되는 형식을 도입함으로써 멜로디 라인이 저음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구사될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아리아의 선율보다는 베이스 라인에서 변주의 소재를 취함으로써 각 변주의 멜로디나 곡의 형식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습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흐는 이 곡에서 사라방드, 푸가, 토카타, 트리오 소나타, 코랄, 아리아 등의 여러 가지 형태의 곡들을 자유롭게 배열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여러 곡들이 무작위로 배열된 것이 아니라 세곡 단위로 묶여져 있으며 각 묶음의 첫 곡은 항상 카논(돌림노래형식의 일종) 형식이며, 이 각각의 카논들은 한 음정씩 증가하는 규칙으로 배열되어 있다.(3변주 1도 카논, 6변주 2도 카논, 9변주 3도 카논,...,27변주 9도 카논). 그리고 마지막 제 30변주에는 그 당시 유행하던 민요 두곡의 멜로디가 인용되어 있는데, 이 곡의 가사내용은 ‘나는 오랫동안 너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돌아오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다오’라는 내용이다. 이 마지막 변주가 끝나면 다시 처음과 동일한 아리아가 반복되는데, 이는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간청에 못 이겨 아리아가 다시 나타나는 것 같은 재미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로잘린 투렉(1988년 발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다양한 형태로 연주되고 있고, 음악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영역이 되어 버린 것 같다.(가장 최근에는 ‘삭스 알르망드’의 색소폰 사중주 연주가 발매되어 나를 유혹하고 있다.) 나 역시 글렌 굴드 4종(1954년 CBC판, 1955년판, 1981년판, 50주년 기념판), 로잘린 투렉, 빌헬름 켐프, 안젤라 휴이트(이상 피아노),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피에르 앙타이(이상 쳄발로), 슈트트가르트 챔버오케스트라(현악), 장 귀유(파이프 오르간), 쿠르트 로다머(클래식 기타), 캐나디언 브라스 밴드(금관), 자끄루시에 트리오(재즈), 키스 자렛(쳄발로, 재즈)까지 다양한 연주형태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음반을 구입해 듣고 있는데 글렌 굴드(1981년판)를 주로 듣고 휴이트와 투렉 여사를 종종 듣는다.(그래도 피아노 연주가 가장 무난한 것 같고, 레온하르트의 쳄발로는 너무 쨍쨍거려 초보자가 1시간 가까이 듣기에는 약간 힘들고 그나마 앙타이의 쳄발로는 조금 부드럽다.)

현재는 글렌 굴드를 비롯해 피아노로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지만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하더라도 쳄발로(하프시코드) 연주가 좀더 일반적인 연주였다. 그 대표적인 연주자가 바로 란도프스카였다. 그러던 것이 클라우디오 아라우와 로잘린 투렉과 같은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로 연주했고, 이후 글렌 굴드에 이르러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탈바꿈하였으며 오늘날엔 쳄발로로 연주하는 것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질 정도가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