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아~ 아~ 앙~”

년 3월 5일 우리 가정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쥐띠 아들 녀석이 이 땅에 태어났다. 결혼 한지 3년 만에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인 ‘아들’이기에 아이에 대한 기억은 바로 행복 그 자체가 아닌가 생각되어진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별의별 사건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다들 공감할 것이다. 남들이 보면 보잘 것 없는 편린들일 터이나 나에겐 소중한 보석 같은 나날이었기에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 아이와의 기억을 산책해보고자 한다.

아들 녀석이 5살 유치원에 다니던 때였는데 하루는 녀석이 코 밑과 턱에 상처가 나서 피를 흘리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신문을 보는 나에게 다가왔다. “아빠! 아빠! 나는 왜 안돼?” 깜짝 놀라 아들에게 달려가 “무슨 일이니? 왜 그랬어?” 하고 물으니 “이거......” 하면서 면도기를 내미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면도용 거품도 좀 남아있고 엄지손가락에 면도기에 벤 자국도 있었다. 알고 보니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면도하는 내 모습을 유심히 보아두었다가 딴에는 면도를 해본 모양이었다. 얼마나 재미있게 생각되었으면 직접 실습까지 했단 말인가! 아들 녀석은 10년은 지나야 할 일을 앞당겨 그날 경험하게 되면서 남자의 세계에 한걸음 들어서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으로 기억되는데 그 날 아침 따라 학교 준비물이 많아 아들 녀석이 가방이 무겁다고 짜증을 부리며 골을 내는 것이었다. 조그만 녀석이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안쓰러워 학교 앞까지 바이올린 가방이랑 미술도구 등을 들어다 주었다. 학교마치고 집에 올 때도 가방을 들어줄 요량으로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되자 학교까지 달려갔다. 교문 앞에서 보니 멀리 운동장 중간지점에서 낑낑거리며 여러 개의 가방을 들고 오는 아들이 보였다.
달려가 가방을 받아주려다 보니 뜻밖에 가방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있는데 아들 녀석 옆에서 웬 여자 아이가 “안녕하세요.”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들 녀석과 팔짱을 낀 채 나란히 서 있는 예쁜 여자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가방 없는 빈손이었고 생글 그리며 깜찍하게 웃기까지 하는게 아닌가. 더군다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아들 녀석이 하는 말 “아빠, 인사해 우리 은지야! 이쁘지? 그리구 저기 있는 은지 집까지(거리로 계산하면 300m는 족히 넘음) 금방 갔다 올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나는 속으로 ‘뭐? 우리 은지? 짜식 벌써 아빠보다 더 좋은 사람이 생겼단 말인가!' 아니 아침에 준비물 가방이 무겁다고 짜증을 부리던 녀석이 자기 여자 친구 가방까지 6개를 들고 저렇게 신이 나서 가다니,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배신감이 스쳐 지나 가는게 아닌가.
‘허-인생무상‘ 나를 지나치면서 멀어져가는 두 녀석의 대화가 내 귓전에 조그맣게 들려왔다. 내 유년의 그림과 함께......

“와! 효준이 너 정말 힘 쎄다. 넘 멋지다~”
“어험! 은지 네가 원한다면 난 뭐든지 해줄 수 있어. 난 슈퍼맨 통뼈거든! 아자!”

아들 녀석이 2학년 때였는데 학교에서 금연교육을 받고 와서는 담배 피는 아저씨들에게 뭐라 뭐라 꼭 한마디씩 하는 것이다. 그러면 피던 담배를 아저씨들이 바로 꺼버리는 것이었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지 궁금했었는데 하루는 아파트 입구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다 아들 녀석에게 발각(?)된 것이다. 아들 녀석을 바로 그 아저씨 정면으로 가서 하는 말 “아저씨 담배 피우면 폐가 썩는데요. 아저씨가 너무 불쌍해요. 오래 못살잖아요.” “헉! 금연 광고가 따로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