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봄이었던가.
평소에는 좀 말을 안 들어도 오냐오냐 하며 심하게 꾸중을 하지 않는 편인데 그날따라 사무실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인 상태에서 별 대수롭지 않은 것에 화가 나서 말 안 듣는 아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야! 너 정말 말 안 들으려면 당장 나가!”하고 호통을 친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난 내방에서 1시간가량 어제 읽던 책을 읽고 있었는데 따르릉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여보세요”
“여기는 00치안센터인데요. 효준이라는 아이가 여기 있는데 귀댁의 아드님 맞습니까?”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죠? 그런데 왜 애가 거기에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 경찰 아저씨 하는 말 “아빠가 집을 나가라고 해서 가출했다고 여기 와서 가출신고를 했습니다.”
“오- 마이 갓!”

4학년 겨울 방학 때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남자 녀석이라 언젠가는 고래(?)를 잡아줘야지 하고 생각 중이었는데 아들 녀석이 어디서 들었는지 수술을 빨리 해야 된다고 우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5,6학년 때 하자고 했더니 그때하면 물건(?)이 더 커져서 많이 아플 거라고 이번 방학 때 하자고 졸라댔다. 하는 수 없이 잘한다는 비뇨기과에 예약을 하면서 내 딴에는 덜 아프다는 레이저 시술을 해줄 것을 부탁해 두었다. 그런데 수술할 때 그 의사가 깜빡 잊고 직접 손으로 아들 녀석의 고래를 잡은 것이었다. 포경수술이 끝나고 집에 와서 마취가 풀리자 아들 녀석은 내죽는다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아파트가 떠나갈 걸처럼 난리법석을 부리는 것이었다.
“아빠 죽을 것 같아요. 너무 아파요 아악....남자로 태어난 것이 후회스러워요. 아악...” 그날 저녁 녀석이 주방에서 자기 방으로 어기적거리며 왔다 갔다 하면서 “아빠! 오 성공! 아픔이여 안녕” 하며 좋아라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수술한 부위가 팬티에 닿으면서 무지하게 아팠던 터라 종이컵으로 그 부분을 덮어 테이프로 붙여놓고서 하는 말이었다. 실밥을 풀 때까지 새벽마다(?) 고함을 지르며 나죽는다던 녀석의 절규를 들을 때면 안쓰럽기보다는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녀석 자기도 사내자식이라고....”
녀석은 자기인생의 가장 아픈 기억이 그날 고래 잡은 일이라 말한다. 앞으로 인생을 살다보면 더 큰 아픔들이 다가올 때도 있을 것이다.

12년 전 우리 가정에 태어나 기쁨과 사랑과 삶의 참의미를 알게 해준 아들이 고맙다. 무자년 쥐띠 해에 6학년이 되는 아들 녀석이 대견스럽다. 녀석을 볼 때 마다 어느 새 또 다른 나 자신이 자라고 있음을 본다. 과학자가 꿈이라며 수학과 영어를 잘해야 된다고 오히려 나에게 비밀처럼 알려주며 충고하는 많이 커버린 아들을 보면서 2008년 한해는 좋은 일만이 우리 모두에게 임할 거라는 기대를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