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부는 모두 나름의 행동규범을 제시해 왔다. 노무현정부는 혁신이 화두였고 그래서 정부혁신, 지역혁신에 매달려 왔었다. 새로 출범한 이명박정부의 행동규범은 창조적 실용주의다. 이명박대통령은 지난 1월 외신기자클럽에서 창조적 실용주의란 미래지향적 사고와 실천적 행동을 통해 낡은 구조의 틀을 바꾸는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야말로 인간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들인 환경, 인권, 빈곤, 질병 등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다른 국가의 발전경로를 답습하여 압축 성장해왔으나 앞으로는 세계와 함께 걸어야 하는 이정표를 세우고 창조적으로 개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모방에 안주하는게 아니라 주체적으로 창조하고 개척해 나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조적 실용주의가 추구하는 목표는 국내적으로 통합의 정치를 통해 국민들에게 경제적 만족감과 행복감을 안겨 주는 것이고, 국제적으로는 아시아와 세계로 시야를 넓혀 글로벌 코리아를 통해 안전한 한반도, 풍요로운 아시아, 정의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하겠다는 것이다.

이제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한민족의 비전을 실천해 보이겠다는 포부를 천명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창조적 실용주의는 새로운 행동규범이 아니라 그 이전에도 한국사회의 정치적 리더십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구에 회자되었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어느 정치인이 이념의 미혹에서 벗어나 실사구시를 따르는 길만이 오늘의 한국사회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라고 주창했었다. 그는 이념과 관념보다 현실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에서 실용주의이긴 하지만 현실안주에 그치는 실용주의가 아니라 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실용주의라는 의미에서 창조적 실용주의라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가 제창하는 창조적 실용주의의 지향점 다섯 가지는 시사 하는바가 매우 커 그대로 옮겨 보기로 하겠다.

첫째 창조적 실용주의는 소통과 연대를 중시하는 것으로 다원화 사회에서 배제가 아닌 포용, 독단이 아닌 공유를 통해 협치(거버넌스)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창조적 실용주의는 일로써 승부하는 성과주의를 지향하며, 총론 보다는 각론을, 이론 보다 경험을, 말 보다 실행을 중시하는 똑똑한 정부를 말한다는 것이다. 셋째 창조적 실용주의는 공동선을 지키는 상생의 가치를 추구하며, 대립되는 가치나 범주에 있어서 제로섬이 아니라 포지티브 섬게임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넷째 창조적 실용주의는 지속가능한 혁신을 추구하는데 발명을 실용화하는 힘이 중요하듯 개혁과 안정을 아우르고 진보와 보수를 묶어 혁신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창조적 실용주의는 세계로 열린 개방을 지향하며 우리나라의 안전과 번영은 세계와의 협력 속에서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실용주의의 원조는 조선시대 실학자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은 관인국가의 유교적 이상을 지향하던 조선왕조가 중종반정이후 관인귀족으로 전락하고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진 상태에서 백성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실용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게 된 것이다.

율곡 이이선생은 실천과 행동을 남달리 강조함으로써 행동주의 철학을 내세워 인간의 의지와 적극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그에게는 말 중심의 인간이나 사회 보다 행동중심의 인간과 사회가 훨씬 의미있고 바람직스러웠다. 율곡의 실천 및 행동중심주의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인간의 의지를 강조한 점이다. 그는 인간이 잘살고 못사는 것이 인간의 문제이지 인간 이외의 것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율곡은 실천되지 않고 집행되지 않은 정책이나 계획은 아예 처음부터 없는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계획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이것은 실천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선생 또한 인간애를 근간으로 한 실천윤리와 이용후생과 經國濟民의 실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공직자의 자기 수양과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그래서 다산선생은 몸소 백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쏟아 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전통적 공직관은 민본행정의 틀 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조의 공직관은 무한한 ‘배려’의 자세를 갖는 것과 공정과 청렴을 요청하는 청백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반면 서양의 실용주의는 행동과 실천을 중시하는 철학의 한 사조로 등장하였다. 그 근본 입장은 우리의 실생활을 존중하고 지식은 실제 생활에 유용하다고 검증될 때에만 참이라고 보는 점이다. 그러나 유용한 것만이 참이라는 실용주의이론은 한계와 모순을 지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에 실용주의가 원칙에 따라 사고하고 행동해야 된다는 것 대신에 유용한 목적에 따라 사는 것이 진리라고 하여 무원칙한 이익추구를 정당화시켜 준다면 국민의 정서와 자라나는 미래의 청소년들에게 매우 끔찍한 가치혼돈을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공직사회가 창조적 실용주의를 자칫 잘못 이해하여 실리만 추구하다 공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 행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공직가치를 통해 공공성과 공적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어야 한다.
공적 가치는 서비스제공을 통해서 생산된 가치, 또는 서비스를 공정하게 공급함으로써 창조되는 가치, 시민들에게 유익한 사회적 결과를 제공함으로써 창조되는 가치, 정부에 대한 시민의 신뢰와 정당성이 생김으로써 창조되는 가치이다. 따라서 공직가치가 확고해야 공공성과 공적 가치의 창출이 가능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사회에 공공성이 빛을 바래고 공직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아마도 공공성이 퇴색한 것은 산업화 과정에서의 지나친 공권력의 작용에 대한 반작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공직가치의 상실은 IMF 경제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민간경영기법들의 정부침투현상이 공직가치에 혼돈을 주고 공직가치를 약화시킨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공직가치를 재정립하기 위하여 Wart의 공직가치모델을 원용하면 개인적 가치, 전문직업적 가치, 조직가치, 법적 가치, 공익가치 등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우선 공직가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공무원의 개인적 가치는 公民的 청렴성(civic integrity)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전문직업적 가치는 공무원의 교육과 지식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공무원의 전문직업적 가치는 행정적 의사결정에 있어서 중요한 원천이다. 셋째로 조직가치는 관계지향적 문화, 혁신지향적 문화, 위계지향적 문화, 시장지향문화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세계화와 지식기반사회의 도래에 따라 공공조직의 문화가 위계적 문화에서 시장지향적 문화, 관계지향적 문화, 혁신지향적 문화로 변화해 가야 한다. 넷째로 법적 가치는 공공행정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주요한 가치인데 민주주의 정부는 법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정당하므로 합법성을 견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익가치는 공적가치관리접근의 맥락에서 효율성, 책임성, 형평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다섯 가지 차원의 공직가치모형에 근거하여 개인가치인 청렴성, 공직 자긍심, 자발적 조직행동을 공무원 개개인의 내적 출발점으로 하여 이를 바탕으로 창의성과 전문성을 지닌 책임과 대응 등 전문가치를 제고하고 변화와 혁신, 조직의 공정성, 일과 가정의 조화 등의 조직가치의 합리화를 지향하며 법과 원칙에 근거한 합법성과 덕성과 윤리에 의한 합리적, 객관적 판단 등 법적 가치를 유지함으로써 형평성, 민주성, 다문화감수성 등의 공익가치를 극대화함으로써 효율적 정부관리와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제고하여 궁극적으로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제 창조적 실용주의 정부 아래에서 병무행정은 존립의 목적을 재검토하고 창조적 실용주의를 실무에 접목해야 한다.
병무행정은 국방을 책임질 병역자원을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동원하여 군생활에서 국가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성을 길러주고 전역한 이후에는 국가 유사시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기본임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국민들은 병역의 형평에 신경이 곤두 서있는 만큼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사회복무제도를 착실하게 뿌리내리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뇌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병무행정은 어느 관료집단 보다 공직가치에 의한 관리를 통해 창조적 실용주의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