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 맡으며 고운님을 찾는 고운사
이웃(?) 때문에 피해 받는 지자체가 몇 군데 있다. 경주의 신라천년 유적에 짓눌린 영천이 그렇고, 남도 일번지 강진과 보성차밭에 끼인 장흥도 그렇다. 국내 최대의 유교 유적지 안동과 살을 맞대고 있는 의성 땅 역시 그 기세에 잔뜩 눌려 있다. 안동만큼이나 화려한 볼거리는 없지만 세파의 때가 덜 탄 고향풍경을 간직하고 있어 의성은 나름대로 순박한 매력을 간직하고 있다.
안동시와 군위군의 중간에 자리 잡은 의성은 강원도에 뒤지지 않는 울창한 숲이 많다. 특히 고운사 솔숲은 조용하고 사람의 손때가 덜 타서 걷기만 해도 마음이 정갈해지는 곳이다. 부석사와 봉정사 등 70여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지만 소박하고 고즈넉한 절 분위기에 겸양의 덕까지 갖추고 있다. 문화재관람료와 주차료도 없을 뿐더러 그 흔한 동동주며 산채비빔밥을 파는 식당도 없다. 고운사가 채움을 위한 절집이 아니라 비움을 위한 절집임을 깨달으려면 천년 숲길을 걸어야 한다. 경내 바로 앞까지 차를 가져갈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최고의 숲길을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1km나 이어진 ‘천년송림체험로’는 피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황홀경이다. 걷기만 해도 세파의 때가 훌훌 떨어져 나간다. 뒤틀린 소나무 사이로 이름모를 야생화가 활짝 피었고, 그 사이로 부엽토로 다져놓은 S자 흙길이 양탄자를 밟는 것보다 부드럽다. 곳곳에 쉼터가 놓여 있어 나무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시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려도 좋다. 최치원의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시가 세워져 있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 가지 끝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상상하며 시간을 죽여도 좋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들의 보급창 역을 했던 고운사는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호를 따서 고운사로 이름 지어졌다. 물 위에 기둥을 세워 올린 ‘가운루’와 고종의 무병장수를 기원한 ‘연수전’, 고즈넉한 극락전, 고운사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46호)도 볼 만하다.

시간의 흐름 속으로-사촌마을
고운사 남쪽 사촌마을로 가면 천연기념물 제405호인 사촌리 가로숲이 고려 때부터 마을입구를 지키고 있다. 평지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한 인공방풍림으로 수령 300~600년 된 상수리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등 500여 그루의 나무가 800m나 길게 이어졌다. 서애 류성룡선생의 어머니가 사촌리 친정집에 해산하러 왔다가 이 숲에서 서애를 출산했다는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의성 사과의 본고장답게 마을입구에는 사과마을 비가 서 있는데 사과꽃을 솎아내는 농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계곡 건너편은 풍요를 상징하는 길조인 왜가리의 집단 서식지가 있어 탐조여행까지 겸할 수 있다. 사촌선비마을에는 30여 동의 전통가옥이 보존되어 있는데 특히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사가 목조건물인 만취당과 영귀정이 눈에 띈다. 미로 같은 고택의 돌담길을 거니는 맛이 그윽하다. 수령 500년 된 향나무는 전통 정원수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귀한 나무다.

계절을 거꾸로-빙계계곡
한여름 빙계계곡은 차가운 바람이 나오고, 추운 겨울에는 더운 김이 모락모락 품어져 나와 ‘한국의 불가사의 계곡’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 건너편에는 수 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이 U자형 협곡으로 이어져 있어 화산지역의 지질형태를 살펴 볼 수 있다. 그 아래는 맑은 계류와 큼직한 바위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일찍이 경북 팔승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계곡 한가운데 유난히 큰 바위에 ‘빙계동(?溪洞)’이라는 글씨는 임란 때 이곳을 거친 명장 이여송의 친필이라고 전해진다. ‘빙계 8경’ 중 제 1경인 ‘빙혈’은 산기슭 바위 아래 4~5명이 들어 설 수 있는 방 한 칸 넓이의 공간으로, 한 여름에 들어가면 바위에 희끗희끗 붙어 있는 얼음을 볼 수 있다. 봄부터 찬 기운이 들기 시작해 하지 때가 되면 얼음이 얼어 평균 영하 4도를 유지하다가 입추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동지 때는 영상 3도가 되어 훈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바깥 계절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 2경인 ‘풍혈’은 좁은 바위 사이로 천연 에어콘 바람이 나와 시원한 냉풍욕을 즐길 수 있다. 제 6경인 빙산사지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은 시원스런 계곡위에 자리 잡아 조망포인트로 그만이다. 이밖에 용의 머리가 부딪쳐 파인 곳으로 알려진 제 8경인 ‘용추’도 놓치기 아깝다. 의성특산물인 산수유 열매를 얹힌 산수유전과 엄나무 닭백숙, 산수유즙으로 국물을 낸 산수유칼국수는 빙계계곡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시집못간 암탉 054-832-2402)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애플와인 만들기
의성사과는 일교차가 심하고 강수량이 적기 때문에 빛깔이 좋고 당도가 높아 '옥사과'라 불린다. 의성은 국내 유일의 애플와인 생산지로 알려져 있는데  너른 사과밭에 들어가 계절에 맞는 농장체험까지 할 수 있다. 4월말, 5월초 한창 사과 꽃이 필 때는 사과꽃을 이용한 화전만들기,  튼실한 과실을 위한 사과꽃 솎기 체험을, 6월과 7월로 넘어오면 작은 사과 열매 솎기체험을, 8월~12월에는 본격적인 사과수확체험을 하게 된다. 사과밭에서 폼 나게 찍은 사진을 가지고 체험장으로 돌아오면 의성사과 맛보기와 애플와인 시음을 하게 된다. 과일을 잘라 소주를 붓고 3개월 후에 마시는 침출주와 달리 사과원료에 효모를 넣고 3개월 넘게 발효한 정통 와인이기에 와인의 깊고 깔끔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시음과 공장견학을 마치면 사과와인 만들기 체험을 하게 된다. 숨쉬는 항아리의 콕을 열면 늘씬한 와인 병에 사과와인이 담겨진다. 펌프처럼 생긴 공구를 이용해 직접 코르크를 막고, 헤어 드라이기를 이용해 병목에 은박지를 붙이고, 사과밭에서 찍은 사진이 라벨이 되어 술병 한 가운데 붙이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사과와인이 완성된다. 사과나무를 볼 수 없는 동남아 관광객으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체험료 1만원, 한국애플리즈:054-834-7800 경북 의성군 단촌면 후평리)

사곡면에서 의성읍 가는 길가에 자리 잡은 의성 신물질연구소에 가면 5월말이면 웅장한 작약밭을 볼 수 있다. 아가씨의 입술처럼 붉어 ‘사랑꽃’으로 불리는 의성작약은 약효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폐교를 개조한 금성면 산운생태공원은 백악기 화산에 대한 기록과 의성의 문화유물을 소개하고 있으며 공원 뒤편에는 운곡당, 점우당 등 전통 고가옥 40동이 있어 돌담길 따라 걷는 맛이 좋다. 금성면 제오리에는 중생대 백악기 시대의 공룡발자국 300여기가 화석을 이루고 있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탑과 목조건물 양식까지 고루 갖춘 탑리오층석탑(국보 제77호)도 의성이 자랑할 만한 문화유적이다. 마늘의 본고장답게 마늘을 먹인 돼지고기를 메뉴로 내 놓은 마늘목장(054-834-9292 의성읍내)의 삼겹살을 맛보는 것이 좋다. 지방질과 콜레스테롤 함유량이 낮고 육질이 신선하고 쫄깃하여 혀끝에 살살 감긴다. 마늘삼겹살에 사과와인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다.의성읍내에 모텔이 몰려 있으며 가족단위의 휴식을 원한다면 금봉자연휴양림(054-833-0123)의 통나무집을 예약하는 것이 좋다. 여행의 피로는 탑산약수온천(054-834-6660)이 좋은데 프랑스 루르드의 ‘기적의 샘’보다 게르마늄 함유량이 두 배나 높아 성인병과 피부질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온천입구에 물 한 통씩 떠 갈 수 있도록 수도꼭지를 만들어 놓았다. 가는길 서울→영동고속도로→원주분기점→중앙고속도로→의성IC→의성(고운사는 남안동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