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 71호 봄호:::::

저는 4개월 차 병무인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꼭 한번쯤은 오게 된다는 곳. 여자인 나는 어쩌면, 한번도 못 올수 있었던 곳.
처음에 내가 병무청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특히 여자친구들이 이제 남자구경은 실컷 하겠다고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었다.
작년 12월부터 일하게 되었으니까 병무청에서 일한지 이제 4개월 남짓 되었다.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간 것 같다.
어른들이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벌써 일한지 4개월씩이나 되었다니..’ 하는 생각에 괜시리 마음이 뿌듯해져 온다.

출근 전 날 설레던 기억, 출근하는 날 거울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낯선 건물과 직원분들 첫 출근하던 때가 바로 어제일 같은데(저 벌써 일한지 4개월이나 되었습니다!!!ㅋ)
처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됐을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민원인의 전화였다. 내 앞에 전화기가 울릴 때� 그 민원인에 대한 원망감이란(이러면 안되지만...)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현역입영과 최솔지입니다.”
음...이렇게 첫인사는 많이 해봤다. 최대한 상냥하고 다정하게.
문제는 끝인사를 제대로 해 본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답변 대신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담당하시는 분 바꿔 드리겠습니다.” 이 멘트였기 때문이다.
전화 받고 나서 봤던 거울 속엔 운동하다 온 듯한 사람이 한명 있었다. 등에 한줄기 땀...
요즘은 “좋은 하루 보내세요”하는 끝인사까지도 할 수 있게 되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많이 부족해서그런지 전화가 울리면, 역시나 긴장된다.

내 병무청 생활 중 친구들이 가장 신기해하고, 나조차도 정말 재미있어 하는 일은 바로 공무원 중 병무청 직원만이 할 수 있을 그 것. “집행 가는 것” 이다. 남동생은 아직 어리고, 어쩌다보니 군대에 보낸 남자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훈련소는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입영일 전 날 밤, 군대가는 사람은 초조함에 잠 못 들지만 나는 설레임에 잠 못 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병무청 직원의 신분으로 훈련소에 간다는 것 자체도 너무 기대되었다.
TV에서만 보던 눈물의 장면들, 어색한 머리를 하고 잔뜩 얼어붙어 있는 동생 같은 사람들이 가슴 한구석 짠하긴 했지만 나에겐 하나하나가 너무나 신기하고 즐거웠다. 아마 훈련소 그 눈물의 장소에서 웃고 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 한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병무청 직원인 것은 티가 난다.
남자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도 모르게 “어느 부대 나왔어?” 뭐, 이렇게 물어 본다든지, 여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군대이야기를 아주 관심 있게 듣는다든지, 아니면 가끔 남자들을 ‘자원’이라 부를 때 등등 생각해보면 웃음이 난다.

아직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해본 일보다 못 해본 일이 많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정말 새롭다.
각자 다른 상황에 처한 민원인의 전화도, 우리 청을 방문하는 민원인의 상담도,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음에 사실 가끔은 막막해져 올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도전정신이 샘솟아 난다.
일을 배우고, 그 일을 스스로 하게 됐을 때의 뿌듯함.. 그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 병무청 내에서의 생활도 재미있다. 다들 딸처럼, 동생처럼 예뻐해 주심을 느낀다.
전에 우리 과 계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었다. 인공 부화된 병아리와 어미닭의 품에서 부화된 병아리의 차이...
어미닭의 품에서 부화된 병아리는 나중에 자신도 자신의 품에서 새끼를 부화시키지만, 인공 부화된 병아리는 자신의 알을
품을 수 없다고 한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만이 사랑을 베풀 줄 안다 ’

아직 많이 부족한 나지만, 공직생활에 입문(?)한지 4개월이 된 내가 지금 확실히 알게 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아직 일에 서툰 나를 배려해주시는 우리 과장님과 과원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주시고 웃어주시는 우리 직원 분들..
항상 너무 고맙다.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나는 어미닭의 따뜻한 품에서 부화된 병아리처럼, 나중에 내 후배에게도 사랑 베푸는 법을 실천하게 될 것임을 믿는다. 물론 민원인에게도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젊음, 병역의무, 나라사랑” 이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진 병무청으로 첫 출근하던 날, 내 이름 석자가 큼직하게 붙여져 있는 자리에 처음 앉았을 때, 처음 내 이름으로 된 기안문을 결재 올렸을 때, 첫 월급 타던 날... 그 첫 기억이라는 거... 너무나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4개월 차 병무인이 된 지금, 그런 행복한 첫 기억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나가는, 그리고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제대로 된 공무원이 될 꺼라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