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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병역이행 수상작

건강한 병역이행 풍토조성을 위하여 국민들이 직접 참여한 병역의무이행 수기집 입니다.

※ 병역이행수상작을 통해 재미있는 이야기와 감동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건강한 병역이행 수상작에 대한표이며 제목, 작성자, 작성일 ,첨부자료,수상자,회수,구분,조회수에 대한내용을 제공
제목 병역면제를 거부한 아들
작성자 : 병무청 작성일 : 2008-11-21 조회수 : 3717

제1회 건강한 병역의무 이행 수기집(상세 내용은 다음 참조) 제1회 건강한 병역의무 이행 수기집
아들을 軍에 보낸 부모님 마음 병무청에 내고 싶은 행복보험료
병역면제를 거부한 아들(최우수상/백정숙)
아들자식을 슬하에 둔 부모로 가장 마음고생을 할 때는 아마도 그 자식이 군대에 가 있는 2년 남짓한 기간이 아닐까. 물론 자식이 병들었거나 신체불구로서 정상활동이 불가능한 경우에 비하면 축복이라고 해야 마땅하지만, 그래도 낳아서 20여 년 가슴에 품 어 온자식이 어느 날 머리 짧게 깎고 “군대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안사 를 남긴 채 훌쩍 떠나는 날부터 부모는 시린 가슴으로 하루하루 노심초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에 매스컴에서 외국 시민권을 가졌거나 시력장에 등 굳이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에 있는 청년들의 자진 군복무 사례를 건전한 미담 으로 크게 부각시켜 떠든 적이 있다. 그 보도를 보면서 우리 가족은 픽 웃었다. 그 청년들이 대견하지 않아 서가 아니라, 우리 큰아들에 비하면 약과이기 때문이었다. 국방부로부 터 "국군에 너는 필요하지 않다."고 딱지맞고도 눈물겨운 노력과 거듭된 도전 끝에 합격판정을 받아 기어이 군인이 된 아들의 경우에 그 정도 가지고 어찌 비교하겠는가. 1996년 봄 대학 1학년 때 신체검사 1급 판정음 받은 아들은 이듬해인 1997년 1원 14일 춘천의 육군 제102보충대에 입소했다. 나는 핑소 자식들에게 강하고 엄격한 어머니로 인식될 만큼 자상함과는 거리가 먼 편이지만, 그날 남편이 운전하는 차로 아이들 훈련소에 데려다주고 찬바람 씽씽 부는 경춘가도롤 달려 서울로 돌아오면서 어찌나 허전하고 슬프던지 눈물올 감출 수 없었다. 자식올 군대에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이렇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렇게나 내 애간장을 저며 놓고 입대한 아이가 사흘 만에 대문율 열고 볼쑥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혈액검사에서 중중 간염 판정이 나와 귀향명령윤 받았다는 것이다. 겉보기 멀쩡하고 어디 아프다는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는 아이가 군복무가 볼가농함 정도로 건강상태가 심각하다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일단 중세가 아느 정도인가 알기 위해 서율대학병원에 데려가 정밀진단을 받았는데, 의사의 소견은 이 정도면 군대는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 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나는 안절부결못해 혼자 가슴을 치다가 소리지르며 방문을 두드리다가 하며 난리를 피웠다. 그러고 나서도 아들은 군복 한번 못 입어 보면 아주 사람구실도 못 하는줄 아는지 미련할 정도로 군대에 가려는 의지를 버리지 않았는데, 다음 신검에서 아예 "병역면제" 판정이 내려짐으로써 아들의 소망은 무참히 좌절되고 말았다. 낙심천만이 되어 고개를 떨구고 있는 아들을 남편과 나는 간곡히 달랬다. "간염도 비활동성만 되면 사회생활 하는 데 아무 지장 없다더라. 좋은 약이 꾸준히 개발되니까 희망올 가지고 건강중진에 전념하도록 해. 2년 이란 황금 같은 시간을 버는게 어디야. 그만큼 네 친구들보다 사회진출을 빨리 하계 되었잖니.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그제야 아들은 불만인 채로 순순히 현실을 받아들아는 것 같았고,남편파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시름 놓았다.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 아들은 의식적으로 이것저것 잘 먹으며, 하지도 않던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 갈았다. 그러면서 이따금 보건소에 찾아가는 기미가 보였지만, 심기를 건드릴까 봐 구태여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그러던 1999년 5원 어느 날, 아들이 빙긋이 웃으며 하는 소리는 너무나 뜻밖이었다. "아버지, 저 입대하게 됐어요." "무슨동판지같은소리야. 네가 어떻개 군대에 가?" "곧 영장 나을 거예요* 늦어도 연말 안에는 가요." 남편과 나는 어안이 벙벙했는데,알고 보니 그동안 나롭대로 건강회 복에 피나는 노력을 기울이며 주기적으로 보건소에 가서 혈청GOT ● GPT 검사를 받은 모양이었다. 마침내 간기능이 거의 정상인 수준까지 돌아왔고, 그래서 병무청에 재검신청을 해서 검사 받아 3급 판정을 얻었 다는 것이아닌가. 아들의 건강이 그토록 호전되었다니 놀랍고 천만다행이다 싶으면서 도 알량한 여자마음은 안 해도 될 걱정거리를 괜히 만들어 안기는 자식이 한편은 야속하기도 했다. 이제 영락없이 2년여 동안 날이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애끓이게 생겼지 않은가. 같은 남자인 데다 해병대 출신 값을 하자는 건지 금방 싱글벙글하며 아둘의 둥울 토닥거리는 남편이 어찌나 밉살스러운지 쥐어박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감정일 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도 끌내는 사랑하는 아들이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그토록 원하던 군대에도 가고 남자 구실을 하게 된 데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싶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1999년 11월 25일 아돌은 논산 육군훈련소에 입소했는데, 이번에는 본인이 극구 사양하는 바람에 논산까지 따라가지 않고 대문간에서 따뜻한 포옹만 하고 떠나보냈다. 한 번 경험한 일이어서 그런지,나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사람 마옴은 이토록 간사한 것인가 보다.
그렇게 기를 쓰고 끝끝내 국군에 입대한 아들온 훈련을 마친 다음 운이 좋았던지, 화학 분야인 학교 전공이 작용한 건지,아니면 병무당국에서 기록을 보고 고맙게 선처해준 덕분인지 모르지만 조치원 육군제62사단 의무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기왕 군대에 갔으면 좀 고생을 해야 인간이 되지,그게 뭐야." 아버지인 사람은 이런 밉살스런 소리를 하고, 자식율 군대에 보낸 똑 같은 입장의 내 친구들은 모두 부러워했지만, 아들이 비교적 잘 풀렸다면 그것은 본인외 눈물겨운 노력을 기특히 여긴 신의 공평한 배려가 아니었올까. 휴가 왔을 때 그런 말을 하니까, 아들은 몸이 고달프지 않을 뿐 절대 편한 생활이 아니라며 정색을 했다. 어쨌든 모범적으로 군무를 무사히 마치고 2002년 1월 14일 제대한 아들은 '정보처리기능사' 와 '인터넷정보기사2급' 자격중을 자랑스럽게 내보였는데, 다른 사병들은 잘 때 혼자 밤잠 아끼며 공부해 민간인들과의 시험에서 당당히 겨루어 딴 것이라고 했다. 오, 참으로 장하고 기특한 내아들! 그렇게 해서 군복무의 소원을 푼 아들은 내년 봄 졸업율 앞두고 지금 작은 회사에 취직해 성실히 근무하고 있다. 병과 휴학으로 같은 학번들 보다 졸업도 사회진출도 다소 늦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길을 잘 개척하며 값진 인생을 살아같 것이라고 엄마는 굳게 믿는다.

첨부파일
수상자 백*숙
회수 제1회
구분 일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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