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교통사고를 냈을 때, 순간적으로 일상의 삶이 깨지며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순간 지루하고 불만족스러웠던 나의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행복한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어떤 ‘행복의 조건’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욕심을 버려야 지금 이미 도달해 있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현재보다 더 나아져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플러스 행복론’이 아니라, 현재 이미 행복에 도달해 있기에 현재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게 방해하는 욕심을 버리는 ‘마이너스 행복론’을 가질 때 진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 중 대부분은 이미 충분히 행복한 상태에 있습니다. 최근에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틱낫한 스님의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 그 분이 프랑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수련원의 곳곳에 ‘나는 이미 도착해 있다(I have arrived)’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에게 ‘지금, 여기’에 있으라고 가르치십니다. 현재 우리는 충분히 행복한 상태에 도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일로 고통받고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또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일을 염려하여 불안함을 느끼며 ‘행복한 현재’를 희생합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지 못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미래를 위해 나는 희생한다’고 말하는 아버지들은 그 사랑하는 가족들과 시간을 갖지 못하지요. 어느 정도 조건이 충족되었다고 생각하여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자 할 때, 이미 아이들 또한 아버지나 어머니가 갔던 ‘행복한 미래를 위한 길’에서 현재를 희생하고 있지요.

저는 아침마다 달리기를 할 때나 마라톤대회에 나갔을 때 뛰는 그 순간을 즐기려고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내 발걸음을 느끼며 내가 달리고 있는 그 순간의 행복함을 느끼고자 합니다. 마라톤대회에 나가 42킬로미터를 뛸 때도 출발점에서 결승점까지 공간의 이동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42킬로미터를 빨리 뛰어 결승점을 통과하는 공간이동을 목표로 한다면 제가 뛰는 3~4시간은 완주라는 미래를 위해 제 인생에서 희생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마라톤의 종반 35킬로미터 이후에는 육체적인 고통이 심해집니다. 허벅지 근육은 바늘로 찌르는 듯 아프고, 종아리 근육은 자꾸 경련을 일으킵니다. 배가 고프고 어깨는 피로에 지쳐 자꾸 쳐집니다. 마라톤을 뛸 때마다 이 순간이 오면 ‘내가 왜 뛰는가’에 대한 회의가 밀려옵니다. 그러나 이 회의는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줍니다. 마치 수도승이 자신의 몸을 고통에 내맡기면서 느끼는 깊은 성찰의 느낌을 잠시나마 갖게 해줍니다. 어쩌면 이 고통의 순간을 맛보기 위해 마라톤을 뛰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고통의 순간마저도 즐길 수 있을 때 진정으로 마라톤을 즐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시계를 차지않고 뛰었습니다. 아침 출근 시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시계를 보아야 하는 구속감을 벗어 버리고 싶었습니다. 뛰고 있는 지금을 방해하는 미래의 구속을 벗어버리니 처음에는 불안하더군요. 그러나 달리기에 몰입하면서 그 불안은 사라지고 내가 뛰고 있는 그 순간의 느낌에 더욱 가깝게 갈 수 있는 것 같더군요. 벚꽃과 배꽃의 어우러짐을 한껏 느끼고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힘껏 안아봅니다. 아이를 안는 그 순간에도 오로지 아이와 내가 안고 있는 그 느낌에 몰입합니다. 우리 가족은 이미 행복한 상태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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