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아픈 듯하지만 아름다운 영화, <동승>. 배경은 절집이지만 일반적인 종교영화가 아니며, 엄마찾기가 축을 이룬다고 해서 단순한 엄마찾기 영화도 아니다. 애기스님이라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눈높이로 따라가는 스토리와, 때묻지 않은 산사 사람들의 풋풋한 정, 또 정다운 이 강산이 만들어 내는 사계의 아름다운 영상미에 흠뻑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기다림’이라는 보편적 문제를 ‘존재의 지향점’으로 대신하고 있는 영화의 주제와 만나게 된다. 존재가 갈구하는 그 ‘무엇’을 무겁지 않게 생각하게 하는 이 작품은 그리움과 기다림 속에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지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다.

깊은 산 고요한 절집. 이곳에 아기스님, 청년스님, 큰스님 등 세 명의 스님이 도란도란 한 살림 꾸려가고 있다.
아기 스님 도념은 절집 일을 돕는 현수 아버지가 단풍나무에 낫으로 그려준 금을 따라 키가 크기를 바란다. 전혀 기억에 없는 엄마가 그만큼 크면 찾아올거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미 수도 없이 그어진 금. 번번이 속으면서도, 아니 속는 줄 알면서도 믿을 수 밖에 없는 어린 도념. 도념 또래의 아들을 잃고 불공을 드리러 오는 미망인을 보면서 도념의 엄마 그리움은 그 깊이를 더해간다. 엄마란 생명의 시원이자 존재의 본질, 그래서 때로는 옆에 있어도 그리운 존재. 아예 엄마로부터 버림 받은, 탯줄이 두 번 끊어지는 경험을 한 도념에게 있어 엄마는 찾아야만 하는 부처이고 진리가 된다.

하지만 청년 스님 정심의 화두는 세속, 성(性)이다. 그는 발등에 떨어진 불은(외적인 고통) 무서워하지 않을 만큼 공부를 하였으나, 자기 안에서 타오르는 색정의 불길(내적인 고통)만은 아직 손도 댈 수 없는 한 젊은 남자일 뿐이다. 그의 고뇌에 해답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배고픈 이에게 음식은 제공해도 대신 씹어 삼켜줄 수 없듯, 어떤 문제든 타자는 도움만 줄 뿐 해결은 존재 그 자신만이 해야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냉엄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결국 큰스님은 “차나 한잔 마셔라.” 선문답 같은 말만을 할 수 밖에 없고, 답을 얻지 못한 정심은 “아무리 기다려도 내것이 아닌 것은 오지 않는다.”는 아픈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난다. 극기를 위해 손가락에 불까지 붙였으나, 불보다 견디기 힘든 게 기다림이라 했다.

기다림 그리움이 쌓여 만든 간절한 마음의 기둥. 세상과 떨어진 산중 사람들만이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게 아님을 우리는 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이렇게 저렇게 얽혀 사는 속세의 선남선녀들 역시 크든작든 끊임없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기다린다.
공부에 지친 학생들은 얼른 어른이 되기를, 군인들은 제대날이 오기를, 결혼을 앞둔 사람은 혼인날이 오기를, 승진이 되기를, 헤어진 사람을 만나기를, 젊은 기운이 힘들 때는 차라리 확 늙어버리기를…. 산다는 것은 기다림의 연속의 다름 아니다. 시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세월이 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우리네의 모순된 삶의 진실이다. 게다가 기다리던 날이 왔다고 해서 행복 시작!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제 겨우, 적어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기다려야 할 끝없는 기다림의 하나에 도착했을 뿐이니까. 그래서 도념이 찾는 엄마는 바로 우리가 찾는, 갈구하는 그 무엇인 것이며, 존재의 지향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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