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남자 동기와 선후배들이 군대에 가지 않기위해 애쓰던 모습이 새삼스럽다. 대부분은 어쩔 수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듯 마지못해(?), 물론 전부 다는 아니고 일부는 기꺼운 마음도 있었겠지만 전체적으로 군에 가는 것을 그다지 반기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같은 모습에 남자라면 당연히 군에 가는 것 아니냐고 윽박지르면 군대 안가는 여자들은 그 심정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며 툴툴거리기 일쑤였다. 그것은 아마도 건강한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 사명감 이런 것들을 몰라서가 아니라, 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20대 눈부신 젊음을 유예한 채 군이라는 낯선 환경으로 편입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신체검사 받을 때쯤이면 어떻게 하면 군대에 가지 않고 빠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는 친구들도 드물지 않았다. 그중에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은 몸무게를 줄이거나 늘이는 방법이다. 지금도 이 방법은 병역을 면제받기 위한 방법으로 여전히 유효해서 가끔씩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당시 몸무게가 100kg에 육박하는 동기 하나는 들입다 먹어대서 과다 체중으로 기어코 군대에 빠졌다. 아, 요즘에는 체중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는 일은 없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당시 소문은 그렇게 났다. 아무개는 찌워서 빠졌다고. 반면 비쩍 마른 한 선배는 신체검사 무렵 생으로 밥을 굶고 쓴 커피를 물 마시듯 하며 체중미달로 면제를 받으려고 기를 썼으나 끝내 군대에 가고 말아 주위의 동정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돌도 소화시킨다는 젊은 날, 허기를 움켜쥐며 굶은 보람도 없었으니 말이다.

본인은 엄청 심각했겠지만 한 때 우리를 웃기게 만들었던 선배, 군대 빠지려고 눈물겹게 노력하던 기세로 보아서는 군복무를 제대로 할 까 걱정스러웠지만 얌전히 현역 복무를 마치고 지금도 씩씩하게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선배가 고위 공직에 오른다거나 선출직으로 진출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이지만 아마 그런 일이 생긴다해도 병역문제 때문에 가슴 쓸어내리는 일은 없으리라. 대신 일부러 과체중을 만들어 군에 가지 않은 사람은 어떨까.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일은 별다른 죄의식 없이 했던 일이다. 더구나 돈이나 빽을 써서 빠진 것도 아니고 자력으로 해결한 일인데 굳이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었다. 주변에서도 비난하기보다는 그냥 혀 한 번 차는 정도였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고 다른 어느 사안보다 병역문제는 4천만의 관심사로 첨예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자식의 병역문제로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두 번씩이나 낙마를 한 것을 비롯 고위 공직 문턱에서 낙마한 인사가 부지기수다. 이처럼 병역문제가 도덕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고 있음에도 심심하면 한 번씩 터지는 것이 병역비리다. 지난해에도 이 문제로 세상을 또 한 번 발칵 뒤집어 놓았다. 유명 스타와 운동선수들이 병을 빙자하여 신체검사를 교묘히 속였다가 들통이 나면서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런데 매스컴에 대규모 ‘병역비리'가 보도되자 걱정이 앞섰다. 물론 병무청의 주장대로 하자면 속임수에 의한 ‘병역면탈' 사건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일단 병역문제가 발생하면 무조건 병역비리로 입력된다. 하지만 표현 방법은 차치하고 비난에 앞서 청장님 이하 직원들의 허탈해하는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분명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병무청 직원이 연루돼지 않았다는 사실을 끝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운 좋게 밝혀지지 않았을 뿐이야'라는 말을 되뇌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안타까움이 앞섰으니 말이다. 병무청이 잘해보려고 애쓰는데 정말 안도와 주는구나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됐다. 이런 사고의 전환에는 물론 비리청이라는 과거의 오명을 벗어 던지고 국민에 한 발 다가서려는 병무청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민참여위원으로 몇 번의 회의 참석만으로 병무청의 속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으나 적어도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저러한 공기관의 회의에 참석해 보지만 병무청의 투명성과 공정성 제고와 업무혁신에 대한 열의와 노력은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평소 칭찬에 인색한 필자의 눈에도 그렇다면 다른 이들에게는 더욱 그렇지 않을까.

하지만 아차 하는 한 순간에 공들여 쌓은 탑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지금과 같은 겸허하고 열정적인 자세로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면 국민과 함께 하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이 그리 먼 나라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해에는 그런 병무청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