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 제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려면, 간단하게나마 저의 소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지방 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 및 박사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는 꿈 많고, 의욕 넘치는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때 돌아가셨으며, 지금은 결혼해서 미국에 살고있는 한 살 위의 누나와 어머니가 있습니다. 넉넉지 않은 가정상황이라 누나와 저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지방대학으로 진학을 하였고, 대학시절 장학금 및 과외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조달해왔습니다. 집안 형편이 이렇다 보니 하루빨리 군대 갔다 와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하여 대학교 1학년 때 자원 입대원을 냈습니다.
그러나, 당시 누나가 대학졸업 후에 미국으로 건너갈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저 밖에 없는 관계로 자원입대를 포기하고, 대구에 있는 IT벤처회사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6개월 근무 후에 병역특례요원으로 채용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병역특례 근무가 힘들게 되었고, 저는 지도교수님과 상의 하에 그동안 제가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낮에는 학교에서 수업 듣고 연구하고 밤에는 과외나 홈페이지 제작 등 아르바이트로 집의 생계나 제 학비 와 용돈을 벌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보니 좀더 깊이 저의 전공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때 마침, 미국으로 건너간 누나가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군 면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박사 과정 중에 군 면제 신청을 할 생각으로 박사과정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공계의 경우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면서, 전문연구요원 시험을 칠 기회가 있었으나 응시하지 않았던 이유는 제 전공의 특성상 박사수료 후에 외국의 연구소에 가서 연구하면서 학위논문을 완성하려면, 전문연구요원보다 군 면제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진학이 제게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했기에 신성한 국민의 의무는 꿈의 뒷전에 두기로 했습니다.
2004년 5월, 병역감면원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여 병무청에 제출하였습니다. 서류 심사하고 최종 통보까지 3개월에서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는 통보를 받고, 저는 그 기간동안 제 나름대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10월 초, 청천벽력과 같은 부결통보를 받았습니다. 제가 고학력자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고학력자면 사회지도층으로 분류되므로, 병역감면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사안 때문에 부결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안 하나로 다른 조건들이 무시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힘으로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사회 통념상의 고학력자라는 이유로 제가 그동안 꿈꿔왔던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부조리하게 보였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물론 국민으로서 맡은 바 의무도 다해야 하지만, 국가역시 개인의 행복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제고를 요청하기도 하였고, 심사 위원회의 회의록을 보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승복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