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하나? 그 날 저녁, 학교 벤치에 앉아 그 동안의 제 삶을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이제는 나이 들어 지친 어머님을 돌볼 생각은 하지 않고, 제가 좋아하는 일만 하길 원했던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또 대한민국 남자라면 그 형편이 어찌하던 국방의 의무가 있고, 우리나라는 사병으로 복무뿐만 아니라 다른 길-학사장교, ROTC, 전문연구요원시험 등-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길을 선택하는데 주저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늦었지만 대체 복무의 길을 선택하여 병역의 의무를 다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위기는 기회다.“ 이번 일을 전환점 삼아 혼자계신 어머니를 모시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 날부터 당장 전문연구요원으로 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제가 공부한 분야가 기초과학분야이고 학력이 높아서 회사 또한 제게 냉담했습니다. 시기도 2004년의 막바지였기 때문에 더욱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병무청을 찾아 솔직한 당시의 제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딱딱하게 규정대로만 일을 진행하리라 생각했던 병무청직원 들은 제가 다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제가 병역 감면원을 제출하고 서류 심사기간 동안 꼭 가고 싶었던 곳에 전문연구요원으로 입사원서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면접을 보자는 통보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떨어졌으리라 생각했던 곳이었습니다. 병무청을 통해 알아본 결과 빠른 시일 내에 면접을 보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고, 바로 채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려주셨습니다. 당시 부결 통보를 받았던 것이 화요일이었고, 면접을 본 것이 그 다음 주 월요일이었으므로 만약에 제가 부결판정에 승복하지 않고 마음상해 있었더라면 찾아오지 않았을 기회 입니다.

사실 저는 운이 좋은 경우라고 주변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 합니다. 하지만, 기회란 것은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병무청이 내린 결정에 승복하여 빨리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선 결과라 생각됩니다. 또한 그런 길을 찾기 위해 솔직하게 병무청 담당자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였고, 입대일자를 연기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셔서, 면접을 보고 또 대학원까지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 이 지면을 통하여 제가 좋은 길로 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대구병무청의 ‘생계감면부서‘에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병무청에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은, 병역감면사유의 예외조항이 병무청 홈페이지에는 나와있지 않아 관계법령을 다운받아서 읽어보아야 하기 때문에 저처럼 법률에 무지한 일반사람들은 설령 관계법령에 명시되어 있다 하더라도 자칫 지나칠 수 있어 판단을 잘못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반드시 관계법령을 다운받아 볼 것을 권고하는 주의의 글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감면원의 경우 입영통지서가 나와야만 이를 신청할 수가 있으므로 부결에 대비해 입영외의 다른 대안을 찾을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물론 가사상황에 의한 감면원이 부결되었다는 것은, 복무의무자가 없어도 가족구성원의 생계가 가능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지만 저처럼 병역감면사유에는 해당되지 않아도 가족의 생계가 어려운 경우가 실제로 있으며, 이경우 바로 입영해야 하는 것은 좀 가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면원이 부결되었을 경우는 그 사유에 따라 안내하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경우를 예로 들자면, 저는 고학력에 의한 병역감면이 부결되었고, 개인의 의사-전문연구요원이나 혹은 현역입대 등-에 따라 병무청에서는 일정기간 입영일자를 유예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지금 국립암센터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고 있습니다. 총 대신 암과 투병중인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미소를 찾아주는 데 제가 가진 지식을 동원하여 돕는 것으로 국방의 무를 대신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