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소에 첫발을 내디딘 지도 어느덧 2년이 넘었습니다. 요즘 가끔씩 이 곳에서 병무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 나의 미래에 과연 어떤 의미로 남게 될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늘 주변 선배님들로부터 지방청과 상담소의 차이점에 대해 듣곤 하지만 지방청 경험이 전혀 없는 지금으로선 지방청에 대한 낯설음과 두려움만 더욱 강해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헤드셋과 전화기, 컴퓨터 모니터에 둘러싸인 상담소의 풍경이 이제는 너무나 익숙해져 버린 탓일 겁니다. 처음 상담소에 왔을 때 느꼈던 어색함과 약간의 뜨악함도 이제 거의 일상 속에 묻혀 버린 걸 보면 말입니다.
병무민원상담소라는 공간은 분명 평소라면 결코 생각도 하지 못했을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 주는 장소입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을 목소리와 컴퓨터 모니터로만 상대해야 하는 곳이자 전국 방방곡곡의 사투리와 온갖 종류의 인터넷 외계어가 정신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이 곳. 여기가 바로 병무민원상담소랍니다.

병무민원상담소의 하루는, 특히 전화상담 업무는 거의 모든 종류의 숫자에 의해 움직입니다. 9시 정각부터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는 상담전화, 45분 상담과 15분 휴식이라는 근무 패턴, 1시간 동안의 칼 같은 점심시간, 통화시간은 평균 1분 40초가 가장 이상적, 한 사람당 하루 평균 130콜 내외 처리, 상담성공률은 평균 잡아 90%... 뭐 대충 이런 식입니다. 물론 사이버상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처리해야 할 총질문의 갯수가 순간순간 업데이트 되다보니 하루 종일 키보드를 두드려 대도 대기 질문 수에는 늘 큰 변동이 없습니다.
사실 상담소를 통하는 상담민원의 상당수는 단순한 편입니다. 간단한 질문과 간단한 대답,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엄청 쉬운 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이 역시 반복되면 엄청난 노동일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한 두 건이야 무난하게 처리한다지만 이런 식의 민원상담이 수 십 건씩 쌓이고 반복되게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쉴 새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담전화를 처리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나고, 발음도 꼬이기 마련이고, 슬슬 목소리도 가라앉아 버리기 쉽습니다. 상담을 시작하는 첫 멘트도 조금씩 바뀌게 되는데 대충 이런 식입니다. “감사합니다. 병무민원상담소 김윤희 입니다.”로 기분 좋게 시작해 “감사합니다. 상담소 김윤희 입니다.”를 거쳐 “감사합니다. 병무청입니다.”를 고비로 결국엔 “감사합니다. 벙무텅임다”로 발음이 꼬이게 되니 이 시점이 그야말로 전화상담의 절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이버상담 역시 쉴 새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손가락 끝부터 시작해 손목, 팔꿈치, 어깨까지 이어지는 통증에 시달리기 일쑤입니다. 또 하루 종일 뚫어져라 모니터를 들여다보아야 하니 눈앞이 빙빙 돌고 시력도 급속도로 떨어져 버리기 쉽습니다.

사실 병무민원상담소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형태의 상담사례를 접하게 됩니다. 이를 테면 만취한 상태로 전화를 걸어 집 나간 아들을 찾아내라고 고함을 치는 아저씨라든가, 몇 십 억대 아파트 소유자가 아들의 생계곤란병역면제를 문의한다거나, 다짜고짜 재산세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소리를 질러대며 당장 동구청장 바꾸라는 잘못 온 전화에, 애인의 군 면제사유를 정확히 알아야겠다며 의혹에 가득 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온 아가씨,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다며 전화 해 순간 상담원을 긴장케 하는 모 종교단체 신도, 군대도 안 갔다 온 게 어디다 손찌검이냐는 아내의 말에 발끈해 자신의 군 복무 사실을 증명해 달라며 흥분해 소리치는 폭력남편, 도무지 이해할 수도 판독할 수도 없는 맞춤법을 완전히 무시한 이른 바 인터넷 외계어로 사이버 상담을 신청해 오는 경우 등 정말이지 그 유형도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뭐니 뭐니해도 병무민원상담소 업무의 가장 큰 고충이라면 불만에 가득 찬 고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순간일 겁니다. 물론 고객께서 그러한 불만을 가지게 된 데에는 우리 병무가족들의 여러 잘못과 과오가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대책 없이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담원의 입장에선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당황스럽고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싶은 생각에 짜증스럽기까지 할 때도 많습니다. 특히 전화상담업무의 경우 앞 뒤 없이 고함을 질러대며 항의를 해오는 돌발 상황에 실시간으로 대처해야 하기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