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명문가 집안(철학자 스피노자의 후손)에서 태어났다.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는 모딜리아니의 예술세계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집안의 명성과는 다르게 궁핍한 형편이었던 모딜리아니는 열네 살 때부터 그림을 시작한다.
이탈리아 회화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성장한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작업을 하면서 그는 시대의 선두에 서고 싶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의 야심은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파리에서 모딜리아니는 조각에 빠져들었지만 물감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던 그에게 조각을 하기 위해 재료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는 건축현장에서 돌을 가져와 조각을 하면서 자신의 앞날을 열기 희망했다. 하지만 병약한 그에게 강도 높은 작업을 요구하는 조각은 무리였다. 모딜리아니는 조각을 접고 그림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20세기 예술운동의 용광로였던 파리는 젊은 모딜리아니의 야망을 외면했다.
모딜리아니는 자신이 겪고 있는 현실을 잊고 싶어 술에 빠져들었다. 그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고 도피처로 술과 마약을 선택한다. 하지만 술과 마약은 그의 생활을 더욱더 황폐하게 만든다. 몽마르트르에서 모딜리아니는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고 술과 마약을 사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하지만 모딜리아니는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굽히지 않았다. 어떤 미술사조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쳐나가기 위해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한다.
비이성적인 감정과 다르게 그의 그림 속은 질서와 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무질서한 감정들로 고통을 더해 갔지만 모딜리아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인간에 대한 강한 애정이 모딜리아니만의 독창적이고 새로운 조형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항상 술에 절여있고 그림을 포기할 줄 몰랐던 가난한 예술가였던 모딜리아니는 인생의 마지막 희망인 잔느를 만나면서 꺼져버린 삶의 불꽃이 다시 타올랐다.
1917년 이후 삼 년도 안 되는 잔느와의 짧은 만남은 모딜리아니에게 ‘생명의 예술'을 창조하게 했다. 이러한 예술성의 진전도 불구하고 그에게 생활은 변함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술과 마약으로 해소하고자 했다. 악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처럼 모딜리아니의 삶에서 가난과 병마는 그를 지치게 한다.
“짧더라도 강렬한 인생을 살고 싶다.”고 한 모딜리아니는 36세의 나이로 불행한 삶은 끝이 난다. 모딜리아니가 죽은 다음날 두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던 잔느는 만삭의 몸으로 남편 곁으로 가기 위해 자살을 한다. 모딜리아니의 죽음은 그녀에게 삶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