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달라졌다.
하는 수탉의 횟소리에 상투를 틀고 의관을 갖춰 나가니 어렴풋한 새벽여명이 벌써 묘시에 가까웠음을 짐작케 한다. 요새 들어 부산포에 왜구의 노략질이 빈번하다 하니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에서 버나 돌리듯 위태위태해. 오늘도 별 일 없어야 할 텐데... 감영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뚜렷하게 다가오는 분주한 풍경들...
‘봉화가 세 개 올랐다... 왜구들이 침략했다...' 다급한 고함소리... 이제야 상황파악이 되는 구나.
일단 파발을 띄워 제승방략제의 협조를 도모하고 현 내의 정남들을 징집해 최대한 이 상황을 견뎌야 한다... 군량미는? 무기고는? 속오군이 부족하면 당장 가가호호 돌면서 끌어내고, 군수품이 부족하면 역시 공납을 부과하면 될 것이야. 나라가 있고서야 백성이 있는 것이지 제깟 것들이 무슨 불만이 있을 수 있나! 그것이 제놈들에게 각자 주어진 운명인 것을...
“누구 게 없느냐, 전령을 준비하고 봉화를 올려라...”
“하하, 꿈에서 연개소문에 출연하나봐. 뭘 올리라구?, 정신차려 이친구야!”
“이상한 몰골을 한 넌 누구냐. 감히 정4품 당상관에게 반말을 하다니. 무엄한지고!”
“사극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정신 차려, 곧 인터넷 민원확대와 관련한 T/F팀 미팅시간이야”
‘여긴 어딘가?.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고객지원팀? 누굴 위해 뭘 한단 말인가?'
고객지원팀? 뭘 하는 곳인고 하니...
민원처리기준(인터넷 민원서비스 확대)통제 및 운영, 민원서비스 헌장, 병역설계서비스, 병무민원BS/AS 국민제안제도개선, 생계유지곤란자병역감면업무처리, 국민만족도 조사, 민원환경진단(개선), 청장에게 바란다, 자유게시판, 참여마당신문고 및 국방민원포털등 대외기관이첩민원처리, 불친절신고조치, 전화 및 인터넷 민원응대모니터링 등등......
직원들은 귀찮고 힘들고.... 고객은 당연히 요구하는 업무들 옛날에는 분산되어 있어 힘든지 몰랐을텐데 골치가 아픈 일들 몽땅 모아 놓았으니 어휴 최 당상관!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흰데 더더욱 백발이 되겠네
장원급제해 어사주를 받던 그 때가, 승승장구 승진하던 그 때가 그립구나. 내가 속해있던 세상에서는 빛나는 존재였고, 모르는 일이 없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으나 갑자기 시대가 바뀌니 사람마저 바뀌는구나. 다시 내 세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살아야겠으니 일단은 주어진 일을 해내야 돼.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테니 일단 한번 부딪혀보자. 오늘 하루가 지나면 내일은 좀 더 수월할 것이야...근데 신기하고 이상한 이 물건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이봐, 컴퓨터 안 켜고 뭐 해? 잠깐 졸고 나더니 사람이 달라진 거 같애.
‘참여마당신문고'에 민원이 떴어. 잘 읽어보고 처리해”
“신문고라니, 북이 어디 있단 말이요. 나는 못 보았소”
“으~ 추워, 썰렁한 농담 이제 그만~”
세상의 모든 것이 이 조그만 틀 안에서 보인다니 정말 놀랍구나. 다시 돌아갈 때도 이 콤토?(컴퓨터를 의미하며 정4품당상관 입장의 표현) 컴퓨터는 갖고 가면 쓸모가 많겠어. 전하, 신문물을 꼭 가지고 돌아가겠나이다. 음~여기 이걸 요놈으로 두 번 누르면 내용을 볼 수 있다고? 그나마 언문을 아는 게 다행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