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자잘한 일들이 쌓이고 싸여 무늬를 만들고 그 무늬들이 우리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고 있다. 삶이 만들어 준 현란하고도 아름다운 무늬들 중에서 사랑만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랑이다.
아름다운 사랑만 하고 살면 좋겠지만 사랑은 그렇지 못하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주는 고통이 싫어 거부하고 싶지만 사랑 없이 홀로 산다는 것은 희망 없이 외로움 속에서 늙어간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 없이 이 세상을 사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그래서 아름답지 않아도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화가는 이와 같이 사랑의 신화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화가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다. 그의 작품만큼이나 모딜리아니의 사랑은 세상 사람들에게 완벽한 사랑으로 회자되고 있다.
[앉아 있는 잔느 에뷔테른]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아내를 그린 초상화다. 열아홉 살의 미술학도였던 잔느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모딜리아니를 사랑한다.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잔느의 집안에서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랑에 빠져 있던 두 사람은 동거에 들어간다. 모딜리아니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지극한지는 잔느의 초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작품 속에 잔느는 첫아이를 임신 중이다. 부드럽게 배를 감싸고 있는 손의 형태를 보아서 그녀가 임신 중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화폭 속에서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잔느는 모딜리아니의 다른 작품속의 인물과 구별되어지는데 이 무렵 모딜리아니는 모델의 단순한 특징만을 표현했었다. 작품 속에 잔느는 어머니로서 가난한 환경에 처해 있는 자신의 복잡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또한, 모딜리아니는 “나는 나를 향해 마주보고 있는 살아 있는 인간을 봐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라고 한 그의 신념처럼 자화상을 거의 남기지 않은 화가다.
다른 화가들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물 위주로 그림을 그렸던 모딜리아니는 모델을 앞에 놓고서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었기 때문에 자화상을 많이 남기지 못했다.
이 “자화상”이란 작품은 그가 죽기 얼마 전에 제작된 작품이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특징을 보이고 있으면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칠해진 붓 터치를 통해 그가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대에 얼마나 익숙지 않았던 지를 느낄 수 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면 누드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누드화는 매우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는 여체를 통해 생명의 아름다움을 공감하고 찬미했다.
[나부] 이 작품은 다른 누드 작품과는 다른 게 이상적인 여인이 아닌 현실속 여인의 모습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모딜리아니가 누드화에서 보여주었던 독자적인 표현방식이 많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나부의 얼굴 표정에 모딜리아니의 시선이 집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세기 전위적인 예술세계 속에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열었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는 가난 속에서 죽었고, 죽어서 유명해진 대표적인 화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