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처럼, 정말로 철판을 온몸에 두른 벌레들이 나올지 몰라. 금속과 금속 사이를 뚫고 들어가 살면서 철판을 왕성하게 소화시키고 수억 톤의 중금속 폐기물을 배설하면서 불쑥불쑥 자라는 잘 진화된 신형바퀴벌레가 나올지 몰라. 보이지 않는 빙하기, 그 두껍고 차가운 강철의 살결 속에 씨를 감추어둔 채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아직은 암회색 스모그가 그래도 맑고 희고, 폐수가 너무 깨끗한 까닭에 숨을 쉴 수가 없어 움직이지 못하고 눈만 뜬 채 잠들어 있는지 몰라.

1999년에 발표된 김기택 시인의 [바퀴벌레는 진화 중]이라는 시의 끝부분입니다. 바퀴벌레가 갖는 강한 생명력에 대한 놀라움과 환경문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인데요, [괴물]의 괴물 출현이 강물오염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발상과, 자신의 생명을 빼앗는 시멘트와 살충제, 중금속 폐기물, 폐수 등의 근대문명과 산업사회의 부산물이 강해질수록 그것에 적응해가는 강한 생명력을 지닌 바퀴벌레와 닮은 데가 있어 적어보았습니다. [괴물]의 이런 발상은 시의적절한 면이 있구요, 또한 종종 심술을 부리는 힘센 친구같은 주한미군에게 할 말을 조금은 했다는 위안이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데 한 몫 했으리라 여겨집니다.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괴물], 어떻게 보면 당혹스런 작품입니다. 괴기영화이면서 가족영화이고 환경영화인가 하면 환경운동단체들을 조소하기도 하고진지해질까 싶으면 툭툭 코미디가 튀어나와 감정의 몰입을 방해합니다. 거대한 괴물에 맞서는 방식이 화염병과 화살로 무장한 한 평범한 가족이라……. 그 가족이 너무 여유롭다는 것이 당황스럽습니다. 어차피 만화적인 요소가 섞일 수 밖에 없지만 중심을 잡아주는 아버지가 없었다면 만화구나 싶은 인상만 남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것은 권력에만 오로지 관심있는 권력계층과 타인의 아픔에는 아랑곳 않는 이기적인 개인들을 비판하는 하나의 풍자로 볼 수 있고 그렇다면 그 반어적 표현은 더 큰 비판을 위한 또다른 장치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론 진지한 것, 즉 깊이 들어가는 것을 거부하는 요즘 세태에 맞는 표현방법인지도 모르겠구요. 그런데 한때 데모가 생활이다시피했던 우리 국민은 화염병의 상징성을, 그리고 주몽의 후예답게 세계대회 때마다 메달을 싹쓸이하는 우리 나라 양궁실력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외국 사람도 그럴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외국에서도 많이 상영될 거라 하는데요.
어쨌든 괴물의 매력은 큽니다. 징그러운 듯 하면서도 징그럽지 않는 외모에 미련스러운 듯 하면서도 다리 난간 사이를 공중곡예 할 때는 더할 나위없는 날렵함을 보입니다. 꼬리를 이용한 몇몇의 장면은 정말 실감납니다. 중간 중간 지금 뭐하는 거지? 싶은 생뚱맞은 장면도 있지만 괴물이 나오는 부분만은 확실하게 빨려들게 합니다. [괴물]이 괴물답게 각종 기록들을 갈아치운다는 소식도 흥미롭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