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턴가 ‘경제전쟁'이란 말이 실감있게 들려왔다. 1990년대 초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서 냉전이 끝난 뒤부터의 일이 아닌가 싶다. 이념문제에 몰두하던 세계가 경제문제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면서의 일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당시 미국과 러시아는 불과 2년만에 핵무기의 대량감축을 위한 협상을 홀가분하게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무역장벽을 낮추기 위해 1986년에 시작한 UR 협상은 무려 7년만에 타결되었다. 때마침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던 두 협상이 전세계를 향하여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지금 핵전쟁보다도 더 무서운 경제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초기부터 대외지향적인 경제를 운영해 왔고, 그 덕분에 성공을 하였다. 1960년대 초반부터 수출증대에 심혈을 기울였고, 수입도 따라서 늘어났다. 수출입을 합한 우리의 무역규모는 이제 전세계에서 12위에 달하고, 경제규모도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섰다. 우리나라가 무역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했다면, 그것은 개방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는 증거다. 우리와 달리, 그동안 수입대체에 집착했거나 시장개방에 소극적이었거나 아예 시장의 문을 꽁꽁 닫고 살았던 나라들은 하나같이 경제가 뒤쳐지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방은 항상 두려움을 안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개발연대 초기인 1967년 GATT에 가입할 당시에도 그러했고, 1990년대에 UR 협상이 진행될 때도 그러했다. 한·칠레 FTA가 체결될 당시에도 그러했고, 지금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하면서도 그러하다. 개방의 확대와 이로 인한 경쟁의 심화가 가져 올 우리 경제의 미래가 불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일 경제개발 초기부터 GATT에 가입하지 않았더라면 한국 경제는 무역을 통해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UR 협상 당시 과감한 개방 대신에 문을 걸어 잠그는 선택을 했더라면 한국 경제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렇게 걱정했던 한·칠레 FTA의 결과는 과연 우려하던 대로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오늘날 세계 많은 나라들이 WTO를 중심으로 한 다자무역체제가 가동되고 있음에도 또 한편으로 자유무역협정(FTA)에 심혈을 기울인다. 통상정책의 다원전략(multi-track approach)이라고들 하지만, 이중플레이임에는 분명하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운명을 단순히 다자규범에만 의존하지 않겠노라는 경제전쟁 현장의 적극적인 행동인 것이다. 전세계적으로도 현재 발효된 FTA는 무려 197개에 이르고, 최근에는 확산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왜 많은 나라들이 이처럼 FTA에 열을 올리는가. 한마디로 WTO 체제가 보편화된 기본형 개방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FTA는 맞춤형, 산업전략형의 고급화된 개방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FTA는 다자간 협상과 달리 체결상대국을 선택할 수가 있다.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고려할 뿐만 아니라, FTA를 통한 산업도약의 모멘텀으로도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교역 기회뿐 아니라 투자와 기술협력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을 기대할 수가 있다. 오늘날 FTA 체결은 곧 경제동맹국의 형성을 의미한다. 특정 국가간에 협정을 맺으면 역내의 경제협력이 심화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어느 나라와 FTA를 맺느냐 인데, 이는 한마디로 어느 나라와 경제동맹을 맺어야 우리에게 유리할까 하는 문제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경제전쟁에 임하는 우리가 고심 끝에 선택한 전략 가운데 하나이다. 이만큼 성장한 우리 경제는 이제 선진국과 경쟁할 수밖에 없고, 선진국 시장에서 경쟁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