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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눈에 세연정(洗然亭)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고산 윤선도는 이곳 부용동 지역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세워 놓고 선유를 즐기며 글을 썼다 한다. 참으로 유배지에 와서 까지도 樂과 文을 두루 함께한 선인의 발자치 그 자체가 부러울 따름이였다.
번잡하고 혼잡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내 자신을 한번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우린 이런 선인에게 별칭을 하나 지어 주었다 풍류를 아는 선비 “윤선도” 이분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별칭이 아닌가 싶다. 고산 윤산도 선생님께서 조그마한 기와집을 동쪽, 서쪽, 중앙에 세 채를 짓고 주자학을 연구했던 낙서재, 낙서재 바로 건너 산 중턱 바위에 지어져 있는 조그만한 정자 동천석실들을 선인의 눈과 발이 되어 지나쳐 갔다. 아침부터 흐릿한 하늘과 더운 바람에 실려 오는 바다 내음이 과거로의 여행에 좋은 안내자가 되어 주었다.
운동부족에 더운 날씨까지 더해져 피곤함이 오는 듯 해 우리는 아쉬움 반 뿌듯함 반을 가지고 우리의 숙소로 돌와왔다. 저녁메뉴는 광주에서 공수해 온 삼겹살, 넉넉히 준비 해 온 터라 여러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마당 한가운데 넓게 펴진 편상에 그 옆에 파란 포장을 깔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호텔뷔페 부럽지 않은 삼겹살 파티가 벌어졌다.
밀려오는 파도소리에 어르신들을 구수한 노랫가락이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어 냈다. 분명 나에겐 낯설은 풍경인데 전혀 이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취기가 살짝 오른 어르신들은 요즘 젊은이들의 세태를 호되게 나무라시기 시작했다. 예의범절에서부터 의지박약까지 나를 두고 이야기 하시는 것 같아 왠지 서글퍼졌다. 그러나 말씀 끝에 우리에게 해주시는 당부 말씀이 우리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었다.
“니네들은 모를 것이다. 부모들이 니그들을 어떻게 맹그러 냈는지, 근디 부모들은 그 고생을 그때 그때 잊어 부러야 그러니까 부모들한데 머슬 보상해야겠다는 생각들은 버리고 그냥 기본에만 충실하믄 디야, 먼 날이라고 한번씩 보내주는 선물, 돈 그란 것 보다 그냥 안부전화라도 한통 따뜻하게 해주고 자식새끼, 손자새끼 보고 싶을 때 보여주고 니그들 오순도순 잘 살믄 그것이 효도인 것이여“ 말씀을 끝마치는 할아버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글썽거렸다.
섬이라는 주변환경이 만들어 낸 어르신들의 애환이 그대로 묻어나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까지도 동요시키고 있었다. 분위기 전환용으로 꺼낸 할아버지들이 좋아하시는 정치이야기는 사회, 경제, 문화 전반으로 이어져 우리는 자정이 훌쩍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챙겨먹고 통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넓은 백사장과 뜨겁게 내려쬐는 햇볕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바다 속으로 안내해 주었다. 물놀이를 마음껏 즐긴 후 중리 해수욕장을 지나 보길도 드라이브를 즐겼다. 우리가 여름이면 즐겨 불렀던 노래 가사처럼 하늘은 우릴 향해 열려 있고 바다는 환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 주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가 후배 어머님이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밤바다를 보러 나섰다. 어둠이 진득하게 내려앉은 밤바다의 운치가 30살 총각의 맘을 설레게 했다. 빙 둘러 앉아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의 현재와 우리가 나아가야 길에 대해서... 이 친구들과 이렇게 진솔한 이야기를 해본적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정직한 산과 바다의 자연환경이 우리들을 한층 더 성숙시켜 놓은듯 싶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다 알고 있었을 것이다. 다들 사회 초년생들로 변화무쌍한 바다같은 세상에 적응을 해가고 있는 것을... 아침에 일찍 일어나 준비해 온 후배 부모님 선물을 드리고 광주로 향했다. 친구들과의 우정, 부모님에 대한 우리의 마음가짐, 우리 젊은이들이 가져야 할 자세 등 이번 여름휴가 안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워 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휴가 때 배워 온 명언 !!
우정은 높게 !!
사랑은 깊게 !!
술잔은 평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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