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나는 몇 달이 지나도 매일같이 'YES' 아니면 'NO'그리고 제일 중요한 'I DON'T KNOW'에 의지한 채 등교하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욕을 더 빨리 배우게 되었는데, 욕은 어떤 상황에서든 잘 통하는 듯 효력을 발휘했고 마치 나만의 비법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욕은 억양이 한국말과 비슷해서 외우기도, 말하기도 쉬웠다. 나는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이런 언어습관 덕택에 나는 학교에서 무서운 아이로 소문이 날 정도였다.
사실, 그 때만해도 영국에는 약간의 인종차별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욕하는 실력(?)은 인종차별을 피해갈 수 있는 무기가 되어주었고 다른 여러 방면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간적으로 효력을 낼 뿐이었다.
성적이라는 큰 벽이 나의 성공적인 적응을 가로막고 있었다. 선생님들과 말이 안 통하는 내 마음은 정말 답답함 그 자체였다! 그렇다고 거기다대고 욕을 할 수는 없는 거고… 그 답답함이 발로가 되었는지, 그때부터 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적에 세계적인 장난감, 그 이름도 유명한 'LEGO' 조립을 밥을 굶으면서까지 했었다. 아버지께서 신상품 레고를 선물로 사오시면 나는 그 다음날 아침 다 완성된 LEGO 모형 옆에 잠들어 있곤 했다. 나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시던 부모님께서는 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셨을 것이다. 좋아하는 것에 모든 노력과 열정을 바치는 나의 유별난 특성은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발현된 것 같다.
어린 시절, 일요일 마다 산봉우리를 목표삼아 등산을 하고, 레고를 하면서 침식을 잊은 것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생각은 이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끝장을 본다.
’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길은 넘어지고 귀찮아도 산에 오르고, 밥은 굶어도 레고는 끝까지 완성시켰던 그 경험의 연장선상에 있다.
내 생각의 바탕이 되어준 이 신념은, 내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며 크고 작은 수많은 목표들을 달성하는 삶을 살도록 나를 이끌어주었고, 나는 그 길 위를 꾸준히 달려 여기까지 왔다.

어느덧 난 대학생이 되었고, 우리 부모님은 우리 네 남매를 영국에 두고 한국으로 떠나셨다.
우리 넷은 대학생인 만큼 각자 책임을 갖고 각자 스스로의 자기 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나는 Kingston University에서 Graphics with photography(그래픽 디자인과 사진)를 전공으로 삼아 내 나름의 방식대로 열심히 공부했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방학 때마다 나의 전공 분야에 맞는 일을 찾아다니며 여러 곳에서 경력을 쌓았다.
영국뿐만이 아니라 2년마다 한번 씩은 한국에 와서 영화사나 방송국에서 일하며 내가 그나마 쉴 수 있는 방학도 반납하고 그렇게 바쁜 생활을 보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나로서는 쉬는 기간 온몸을 바쳐서라도 열심히 일하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내가 그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무엇인가 대가가 있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내가 그 일을 통해 배운 점과 느낀 점이 내게 영원한 경험으로 간직되고, 이 경력이 언젠가 도움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만으로도 나는 만족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