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3학년을 마친 뒤, 난 다시 한국으로 갔다.
그 때는 정말 쉬고 싶은 마음으로 갔는데 나의 본능적인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육체적인 노동은 아니었다. 작가 누나들과 같이 사무실에 앉아 있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촬영도 일주일에 한번 뿐이라 그다지 활동적인 일은 없는 편이었지만 전에 해봤던 일과 달라서 나름대로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동안 난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인맥을 맺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미래를 위한 또 다른 무기가 되어 주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영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오가면서 사회 문화배경이 다른 여러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가 생기고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면서 느낀 바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다.
철이 없었고, 나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고 여겨졌다. 오로지 내가 나를 시험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또한 내 자신을 위한 미래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문제를 두고 아버지와 나 사이에 충돌하는 일도 빈번해져갔다.
아버지가 말하시기를 떳떳한 한국 사람이 되기 위해선 군대에 가야한다고 당부하셨다.
그 때 나는 돌연, 군대에 가겠다는 마음을 다잡았다.

학교도 1년만 다니면 졸업임에도 불구하고, 입대를 결심한 이상 그것을 모든 일의 우선으로 두기로 했다. 그때 짧은 일정으로 영국으로 가서 군대에 있는 동안에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또 영국에 돌아가 복학하는 과정이 매끄러울 수 있도록, 미리 최대한 준비를 해놓았다.
군대 가기로 결정한지 한 달 후, 어머니의 눈물을 마지막으로 보고 훈련소 내무반에 들어온 나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또 다른 세상에 홀로 서있게 된 것이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기 싫어서 입대했다고 이야기하자 여러 지휘관들과 전우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정말 멋지다’고 말해준 사람도 있었고, ‘정신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라는 안 좋은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다.

훈련병 시절에 나는 2년이란 시간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난 정해진 시간에 잘 수 있었고, 하루에 세끼를 챙겨 먹었고, 또 훈련을 통해 그만큼 몸이 건강해지는 생활에 만족했다. 5주라는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새 절친해진 전우들과도 이별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러나 다른 전우들과는 달리, 나에게는 전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준비되어 있었다.

‘전경’이라는 단어는 그 때 처음 들었다. 알고 보니, 전투경찰의 줄임말이었다. 난 순간 영국에 있는 멋진 경찰관들이 생각나 혼자 상상 나래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난, 수많은 데모와 시위를 진압하는 ‘대한민국’의 전투경찰이었다.
영국에서도 뉴스를 통해 가끔씩 한국에서 일어난 여러 불법 시위 현장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폭력 시위와 진압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해 냉정히 외면하고 있던 나였다. 전투경찰로 자대배치를 받으니 앞으로 남은 군 생활이 더욱 길고 멀게만 느껴졌다. 더욱이, 한국말에 서툰 나는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군대에서 실수와 변명은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로인해 더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이후로 나의 군 생활은 점점 재미있어졌으며, 차츰 더욱 긍정적으로 변화되어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