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줄었다면, 이유가 뭘까. 끊임없는 제국의 전쟁에서 귀족들이 앞장서 나섰기 때문이다. 포에니 전쟁 당시 전쟁세가 신설됐을 때, 가장 먼저 수레에 돈을 실어나른 이들이 원로원 의원들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신분에 걸맞은 의무다. 로마까지 거슬러 갈 것도 없다. 영국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재학생 3분의 1 이상이 세계 1차 대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미국 하버드와 예일 같은 대학의 본관 홀에 들어서면 맨 먼저 접하는 것이 역대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산화한 졸업·재학생들의 이름이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 당시, 영국의 앤드루 왕자가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맡은 임무는 영국 전함의 주위를 선회하면서 적으로부터 날아드는 미사일을 대신 맞는 거였다. 미국정부의 상속세 폐지에 반대하는 청원운동에는 빌 게이츠 MS회장 부친, 록펠러와 루스벨트가의 후손, 조지 소로스와 워렌 버핏 등이 참여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딸깍발이나 경주 최부잣집의 일화에서 보듯 우리에게도 유구하다. 청렴과 염치, 자존과 명예가 결국 그것이다. 하지만 천민 자본주의의 도도 속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먼 나라 얘기가 됐다. 지도층의 부패와 투기, 편법 상속 등이 끊이지 않는 게 산 징표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것은 병역을 둘러싼 끊임없는 시비와 논란일 터이다. 거기에서는 장관·정치인·재벌회장·판검사·의사·운동선수·연예인 가릴 것 없이, ‘오블리주’는 없는 ‘노블레스’만 창연했다.
해서, 더욱, 대한민국의 최고 스타들이 줄줄이 현역으로 입대한다는 소식이 당연한 것임에도 아름답다. 김종국과 조성모, 신화의 김동완·에릭·이민우, god의 김태우·손호영, NRG의 이성진, HOT 출신의 강타 등이 올해 중 입대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 입대한 영화배우 원빈은 최전방 철책선 경계부대에 배치됐다고 한다. 이들의 솔선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생각케 하는 한 계기가 됐으면 싶다.

[경향신문 양권모 논설위원 2006.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