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에는 일본 동경에 사는 누이 집을 방문하였다. 출국 전엔 나라 간의 과거사와 민족적 편견에 대한 노파심이 없지 않았지만, 날씨, 각종 편의시설 등이 비슷하고 만난 사람들의 성격도 상냥하여 언어소통을 빼고는 여행의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온천지나 고도(古都)의 이국적인 풍경은 나름대로 해외여행의 정취를 느끼게 하였고, 일상생활에도 우리가 사는 방법과는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본의 풍물에 대하여는 인터넷으로 마주할 수 있으므로, 아침 운동 삼아 동네를 돌면서 내가 발견하고 느낀 그들의 삶의 모습 서너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일본의 주거형태는 아파트나 다가구 주택이 적고 대다수가 단독주택이며, 흥미로운 것은 그 많은 집들이 판박이처럼 비슷하다는 것이다. 도심의 주택가나 시골마을의 농가나 여행객의 눈으로 보면 구조가 비슷비슷한 이층집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어, 규모도 그만그만해서 얼핏 보면 그 집이 그 집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잇닿아 있는 것이 그들의 집이고, 시간을 묶어두려는 사람들의 소망이 그네들의 집에 나타난다.
지붕을 예로 들면, 고풍스럽다 못해 썩어가는 목조 지붕과 최신 소재의 세라믹 재질로 마감한 지붕이 백년이 넘을 것 같은 세월을 건너 옆집에 어깨를 기대고 있다. 집들의 내부 구조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획일적이거나 축소 주의적이라는 우리의 냉소를 넘어선 유구함이 그들의 집에 담겨 있다.

또하나의 특이한 점은, 필요하면 행정기관이나 은행들의 제도와 기능을 과감하게 고치면서도(여행 체류지는 東京都 西東京市인데 2001년에 田無市와 保谷市를 합병한 자치단체임), 우리나라에서 70년대에 유행하던 국수집, 목공소, 철공소 같은 소규모 가내공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도심 한복판에 “생산녹지지구”를 지정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데, 소규모 생산 활동이라 노력에 비해 소출도 보잘 것 없을 일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사회적인 비용을 감안한 계획된 정체 같아서 부럽기도 하였다.
이러한 조화와 공존의 의식은 종교와 장묘문화도 예외는 아닌 것 같았다. 시내 곳곳에 유서 깊은 신사(神社)와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종교시설은 대부분 납골을 겸하고 있으며, 마을 가운데 납골묘지는 우리 눈에 생소해 보이지만, 이 또한 단순한 과거와의 조화를 넘어서는 지혜로움으로 비쳐졌다.
도심의 고궁, 신사, 소공원, 생산녹지 등 공공녹지가 아니라도 동경의 거리 대부분은 녹지와 꽃밭으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꽃과 나무를 가꾸고 있다. 아파트의 경우 1층은 정원을 가꿀 수 있는 프리미엄 때문에 분양가가 제일 비싸다고도 하며, 단독주택의 마당 가꾸기도 예외는 아니어서 옆집끼리 무화과, 천리향, 협죽도와 같은 상록 정원수를 경쟁하듯이 가꾸고, 정원이 없는 집들은 나무 담장에 화사한 꽃 화분으로 치장을 했다.
요즈음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는 웰빙과 로하스를 오래전부터 생활화 하고 있는 것이다. 짧은 기간의 방문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회를 이해 하기는 어렵지만, 준비하고 가꾸고 보존하는 일본 사람들의 생활자세는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이 꽃과 나무를 정성들여 가꾸는 모습은,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마당 한켠이나 장독대 모퉁이에 무더기로 가꾸던 장다리꽃이나 맨드라미, 상사화 들을 떠올리게 했다.
과거 아날로그 시절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자연의 아름다움과 꽃과 나무를 가꾸면서 보냈던 그런 여유로움을 잃어버린 채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 가는 우리 세대가 삶의 풍요로움과 여유가 진정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짧은 여행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