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2월 1일을 맞았지만 2006년 2월 1일만큼 뜻 깊은 날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날은 바로 내가 공무원으로서 첫 번째 근무지인 서울지방병무청으로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서둘러서 준비하고 나갔다.
왠지 신규직원처럼 보이기 싫어서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정문을 지나쳐 본관을 향해 들어가는데 청원경찰분이 나를 보더니 한 말씀하셨다. “2층 총무과로 가셔요” 아닌 척 해봐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어수룩하게 보였던 걸까? 마침 그날은 전체적으로 인사발령이 있는 날이었고 한편으로는 연예병사 지성의 병무청 홍보대사 위촉식도 있는 아주 분주한 날이었다.
이리저리 인사하고 몇 가지의 서류작성하고 잠깐 교육도 받고 지성의 병무청 홍보대사 위촉식도 참석하다보니 오후 4시가 되어서야 가까스로 발령받은 징집과로 갈 수가 있었다.
여태까지 살면서 ‘징집’이란 단어를 그 날 처음 들어보았다. 아마 병무청으로 임용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들어보지도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난 “감사합니다 징집과 송혜림입니다”라고 전화를 받으니 요새는 징집이란 단어와 너무 친해진 듯 하다.
2월 27일 의정부 306보충대에 집행이 있는 날이었다.
병무청에 출근한지도 어언 한달이 다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말로만 듣던 ‘집행’을 참관하기 위해 오늘은 306보충대로 출근을 했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날씨도 어찌나 좋은지 귀에 꽂은 음악소리에 덩달아 신이 났다.
그렇지만 막상 가보니 구름떼 같이 몰려든 인파 속에서 입영사무소를 찾아 헤매느라 나는 정신이 없었다.
집행관을 따라 들어간 곳에는 400여 명의 남자아이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순간 난 당황했다.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상태로 그들 앞에 서 있는 것이 너무 민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곧 긴장된 얼굴표정을 하고 앉아 있는 남자아이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들에게 나에 대한 호기심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알고 그 분위기에 차츰 적응해갔다.
대부분 나이도 85년, 86년생들이고 내 동생보다도 어리니까 곧 막내 동생 같은 생각도 들었다. 실질적인 집행이란 병적기록표를 나누어주면서 현역비대상자가 입영했는지를 파악한 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명부와 현재 인원을 대조하여 그곳에 있는 입영자들을 확인한 뒤 오지 않은 입영자의 명단을 추려내서 지방청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사무실에서 처리하는 일보다 쉬울지는 모르지만 징집을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일이 집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입영자 파악하는 일을 하면서 신병들을 바라보니 내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행을 처음 간 날 그들이 입소를 했고 혹독한 훈련생활을 거친 뒤에 부대배치를 받고,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힘들겠지만 곧 익숙해질테고 계급도 높아지고, 후임병도 들어오고, 그러다보면 전역이라는 시기도 올 것이다.
나도 지금은 그들처럼 훈련 과정중에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많기만 해 보이는 업무도 나름대로 익숙해 질 것이고 곧 현재 나의 친절한 사수님처럼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병무청에서 근무한지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이 글을 쓰며 첫날을 회상하니 우습기도 하고 이젠 좀 병무청 직원의 티가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우쭐해지기도 한다.
처음 입사했을 때 책꽂이에 꽂힌 어려운(?) 병무관계 서적 속에서 찾아낸 “병무”지! 여느 회사의 사보처럼 깔끔한 디자인에다 많은 유익한 정보, 전문적인 내용들..
가장 놀란 건 이 내용의 대부분을 병무청 직원이 직접 원고를 작성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틈 속에 갓 한달된 신규 직원이 쓴 글이 실릴지는 의문이지만, 지금 이 순간 이글을 읽고 계시다면 누구에게나 있는 처음의 기억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시간으로 삼아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