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국 남자에게 병무청이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졸린 눈을 비벼가며 새벽부터 찾아가야 했던 신체검사장, 국방의 의무를 확인시켜주었던 입영통지서, 군을 제대해도 해마다 소집되어야 하는 동원훈련 등... 병무청이란 곳이 도움 주는 것 없이 의무만 부과하는 곳이란 생각에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병무청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 병무청으로 부처선택을 하고는 묘한 감정과 약간의 긴장감이 더해졌었다. 지금까지는 병무청에서 부과하는 징집과 훈련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부터는 병무청 공무원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 남성에게 국방의 의무를 지우는 자리에 선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어깨를 무겁게 하는 것 같았다.
이런 감정을 뒤로하고 2월의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나는 서울지방병무청에 들어섰다. 서울 병무청은 생각했던 것보다 꽤 넓고 쾌적해서 긴장되어 있던 마음을 조금은 누그러트리는 편안함을 주었다.
동기와 함께 병무청 내의 각 부서에 간단한 인사를 하고, 나는 동원 1과에 배정 받으면서 공무원으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동원 1과에 들어서면서 나는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직원들의 자유로운 모습과 활동적인 분위기에 많이 놀랐다. 병무청이란 곳이 다소 권위적이고 딱딱한 조직분위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었는데, 여직원이 많아서인지 자유롭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낯선 환경에 눌려 어색해 하던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내가 배정 받은 동원 1과는 동원계획팀과 동원 1팀, 동원 2팀, 그리고 예비군 자원 관리팀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나는 그중에서 동원 2팀에 소속되어 양천구를 담당하게 되었다.
내가 맡은 일은 크게 보면 양천구 예비군들을 관리하고 동원훈련을 준비해서 집행하며 그 후속처리를 하는 것으로 단순·반복적인 일처럼 보이지만 일이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업무의 특성상 예비군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병무청과 지역예비군부대 및 군부대와의 행정 조직의 이중성으로 업무의 통일성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또한 업무의 절대적인 양이 적지 않아서 힘에 부칠 때가 많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있는 자에게 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자에게는 강한 것이 병무청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병무청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예비군들의 민원을 상대하는 것은 곤욕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병무청 내에서는 늘 친절을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물론 국민의 봉사자이며 공복인 공무원으로서 국민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친절함으로써 병무청과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좋아질 수도 있고 병무청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되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병무청이라는 조직의 특성상 언제나 친절한 것이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를 치는 이들에게 친절이라는 사탕보다는 엄정한 채찍을 내리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도 해 보았다.
그리고 업무를 배우면서 예비군들을 하나의 자원으로 부르는 것을 보고 좀 아쉬었다. 자원관리, 자원조회 등... 물론 인적자원이라는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군인들은 우스개 소리로 스스로를 일회용 소모품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그들이 우리가 자신들을 자원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병무청에 임용 된지 20여일이 지났다. 임용 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병무청 안에서 생활하며 주변의 병무청 직원들을 보면서 공무원 조직 바깥에서 바라보는 공무원에 대한 시선이 얼마나 잘못되었나를 자주 느꼈다.
언론매체에서 부각시키는 철밥통의 무능한 공무원의 모습보다는 공무원으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대부분의 노력하는 공무원을 보면서, 공직에 대한 뚜렷한 사명감 없이 단지 사회적 안정과 물리적 장점만을 지향하는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앞으로 공무원으로서 많은 과정과 시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은 출발선에서 준비하고 있는 마라톤 선수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병무청 공무원으로서의 길이 순탄하고 즐거운 일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이제 그 첫 걸음을 떼어 놓은 이상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능력 있는 공무원으로, 병무청에 대한 이미지를 더 밝게 할 수 있는 공무원으로 평가 받고 싶고 그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