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之者 不如好者 好之者 不如樂者
(지지자 불여호자 호지자 불여락자)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전 인사이동 후 새로운 부서로 보직을 받은 나에게 최종대 총무과장님께서 주신 작은 쪽지에 적혀 있던 글귀이다. 과장님께서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된 여러 직원들에게 환영의 의미로 평소 당신이 좋아하신다는 논어에 나오는 글귀를 적어 나누어 주시며 스스로 즐기지 못한다면 결코 진정한 최고가 될 수 없다고 프로가 되라고 격려해 주셨다.
나는 쪽지를 받아 들고와 업무 수첩 첫 장에 붙이며 한참을 생각했다. 고등학교 한문시간에 시험에 나온다고 열심히 외웠던 문장이었는데 10년이 지나 다시 받아 본 이 글귀는 한동안 내 가슴을 때렸고 그리고 내가 처음 병무청을 들어서던 2002년 10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시험만 합격하면 모든 일들이 다 해결되는 줄 알았다. 왜 고등학교 때는 대학만 가면 앞으로 살아갈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나 보고 복사나 해오라고?

어렵게 공부해 시험에 합격해서 들어온 병무청. 요즘 같은 취업난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들어왔으니 부모님께서는 꽤나 자랑할 만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나의 직장생활은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처음 병무청에 들어와 나는 동원과로 발령을 받았다. 동원1팀 육·국직 훈련소집 담당으로 보직을 받았으나 그 해 훈련소집이 모두 끝이 난 후라 팀 내의 서류정리, 심부름, 복사는 내가 도맡아서 했다. 소집부대 명부 표지 만들기에서부터 모든 서류 색인목록 만들기 등 하루 종일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이는게 일이었다. 하루 종일 일하고도 복사가 깨끗하게 안됐다느니 색인목록 줄이 맞지 않다느니 하고 말도 많이 들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수없이 많은 전화를 받았다. 어쩌다가 집에서 낮잠을 자다가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 에도 “감사합니다. 경남병무청 동원과 지하영입니다” 라고 말할 정도였다.
거의 일이라고는 할 수도 없는 이런 일상의 반복은 엄청난 고민을 안겨줬다.
“이런 일이나 하려고 그렇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공무원이 되었나?” “내가 이 조직에 필요 없는 사람이라서 이런 일만 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었다. 나 자신과 조직에 대한 실망이 굉장히 큰 시기였던 것 같다. 심지어 다른 직장을 알아볼까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때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일처럼 안보일지 모르겠지만)이 일어났다.
나와 함께 일하던 송 선배님께서(당시 나의 사수님이셨다^^) 심부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