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씨, 이거 전산팀 김모 선배에게 갖다 주고 와. 전화통화 했으니 주면 알아.”
아직 누가 누군지 얼굴도 제대로 알지 못하던 터라 사무실 좌석 배치도만 보고 열심히 전산팀 김 선배님만 찾아 서류를 전해줬는데
“이거 왜 가지고 왔어요? 이게 머죠?”
“네? 송 선배님께서 갖다 드리면 아신다고 하던데.....”
“신입인가 보죠? 아니 뭔지도 모르고 들고 왔어요?”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때 난 알았다. 일이라는 것은 스스로 배워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 것을 일부러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선배님들이 시키는 복사와 서류정리, 심부름 중에도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집부대 목록과 명부를 작성하면서 소집부대 이름을 익히게 되었고, 서류의 색인목록 작업을 통해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기안문은 어떻게 작성하는 것인지, 낯설게만 느껴지던 동원 관련 용어가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서류내용에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선배님들께 묻기도 하고, 아닌 것 같은 것은 말도 안되게 따져 보기도 했다. 그리고 주위에 계신 선배님들 곁에 다가가 무엇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쉬고만 계실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MOAS를 검색하시고 병무청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면서 연신 메모 하시는게 아닌가?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나또한 업무 수첩을 항상 펼쳐 놓고 모르는 것을 적어 나갔다. 복사는 꼭 두 장씩 해서 한 부는 내가 챙겨 보고, 전화통화 내용은 모두 기록하고, 선배님들 말씀 한마디 한마디 모두 적어 가며 무슨 뜻인지 의미를 파악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 수첩을 보면 웃음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때 일을 떠올리며 다시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그렇게 실망하며 힘들어하던 시간들은 어느새 흘러 나는 신입사원 딱지를 떼고 벌써 입사 3년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내게도 귀여운 후배가 두 명이나 생겼다.
우리 과장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일을 즐기는 수준(樂者)까지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어설픈 아마추어이지만 적어도 일을 알고(知者) 좋아하고(好者) 있다. 지금의 내 자리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최고의 프로가 되려면 아직 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하고 어쩌면 더 많은 시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일을 즐기는 그날을 위해.. 진정한 프로를 꿈꾸며 오늘도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