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반에는 우연히도 ‘동성애’ 영화가 많습니다. 한국 영화의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왕의 남자’가 그렇고 일본영화 ‘메종 드 히미코’, 프랑스 영화 ‘타임 투 리브(원제는 Le temps qui reste)’, 그리고 미국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이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 영화들은 수준급들이어서 동성애에 대한 관객들 시선을 관대하게 만들어주는데요, 특히 ‘왕의 남자’는 동성애 문제에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이 사회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어 항간에서 쑥덕공론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왕의 남자] 인기 요인은 일단 탄탄한 시나리오에 있겠지만, 그동안 주된 소재로 다루어지지 않았던 광대의 삶이나, 가장 천한 광대가 가장 존엄한 왕과 함께 어울리며 한껏 풍자하는 극적 상황의 제시, 빨강 파랑의 화려한 색감, 광대들이 놀면서 보여주는 볼거리, 동성애 코드, 또 예쁜 남자 신드롬 등 흥미거리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광대 놀이를 하는 연산군을 보다보니 로마 황제 네로가 연상되는데요, 네로 역시 자작시 노래하는 것을 끔찍하게 좋아했으니까요. 오죽하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로마 대 제국의 황제가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 심사발표가 날 때까지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렸을까요. 더욱이 식민지였던 그리스 각지에서 벌어지는 자작시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으로 얻은 황금 월계관이 1,808개에 이르렀다니까, 이만하면 미쳐서 로마에 불을 지르고 시를 읊었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7권>[로마인 이야기 7권]에서 이야기합니다.

이 두 사람은 폭군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그들의 성격장애는 어머니 사랑과 관련이 깊어 보입니다. 연산군은 모정 결핍으로, 네로는 모정 과잉으로 말이죠. 영화에서 보여지듯 연산군은 녹수의 치마 속으로 얼굴을 파묻고, 녹수는 한 나라의 왕을 아기 다루듯 합니다. 엄마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 때문이라고만 하기에는 좀 지나치다 싶은 연산군의 행동에는 엄마를 죽인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도 상당히 섞여있을 겁니다.

한편 두 번째 남편인 황제 클라우디우스를 독살하고 전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 네로를 황제 자리에 올린 네로의 엄마는 그렇지 않아도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던 판에, 아들이 황제에 오르자 자기 덕인 줄 알라며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하기에 이릅니다. 어릴 때야 모르지만 성인이 된 네로가 황제로서 로마시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권력 맛을 보았으니 고분고분 말을 들을 리 없습니다. 엄마의 그늘에서 벗어나려는 아들의 욕망과 아들을 치마 폭에서 좌지우지하여 제국을 통치하고 싶은 엄마의 야망이 부딪치면서 아들은 폭군으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는 바로 노래 대회 참가 같은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구요. 살아가면서 주위 모든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특히 어머니의 역할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길이 연산군의 아픔을 보며 잠시 연민의 정으로 그 곁에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