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여 간의 군 복무, 그것은 과연 젊음의 무덤일까? 공백과 퇴보의 시간들일 뿐일까? 나 또한 ‘때가 차서 어쩔 수 없이’ 입대한 것에 불과한가? 10월 22일, 그 날의 행군은 내게 병역임무 수행이 얼마나 보람차고 가치 있는 일인 지에 대한 확고한 해답을 안겨주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급경사로 장식된 험한 언덕길을 오르내리기를 수 차례. 간간이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터져버릴 듯 가빠진 호흡을 애써 가라앉히면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과 힘겹게 투쟁하고 있던 나의 시야에 홀연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행군대열의 선두에 서서 인원들을 인솔하고 있던 한 분대장님께서 ‘자, 조금만 더 참자. 곧 오늘의 하이라이트다.’고 말씀하신 지 1분 여. 오르막길이 끝나 서서히 시야가 트이기 시작하면서 펼쳐진 풍경. 드넓은 평지. 그 위로 옹기종기 서 있는 여러 건물들과 아파트 단지들에서 퍼져 나오는 무수한 사각형들. 그 사이를 여유롭게 왕래하고 있는 성냥갑처럼 조그맣게 보이는 차량들이 뿜어내는 불빛들, 불빛들.... 바로 논산시의 평온한 야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름다운 장관을 바라보며 말없이 밀려오는 벅찬 감동과 조우하면서, 나는 행군으로 쌓인 피로감을 깨끗이 날려보낼 수 있었다. ‘저 아래, 우리의 이웃들이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구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의 단잠을 준비하고 있겠구나. 저들의 행복을 지켜주는 일에 힘을 보태고 있는 나는 얼마나 보람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소총 멜빵끈을 감싸 쥐고 있는 나의 오른손에 불끈 새 힘이 샘솟았다.

막사로의 복귀로는 비교적 쉬운 길이었다. 날씨는 조금 더 쌀쌀해졌지만, 이제 종착점이 머지 않았음을 알기에 나와 동료 전우들의 발걸음은 오히려 처음보다 가벼웠다. 복귀 예정시간을 1시간 가량 앞두고 주어진 마지막 휴식시간, 나는 눈을 들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맑아서였을까? 수많은 별들이 밤하늘의 구석구석을 채운채 초롱초롱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 하루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고 읊었던 윤동주 시인의 노래처럼.

만약 하늘 위에 빛나는 저 별들이 모두 자취를 감춘다면 밤하늘은 적막과 아쉬움의 공간으로 바뀌어 버릴 터. 내 시야를 포근함으로 채워주는 하늘의 온 별빛이 너무도 따스하게 고맙게 느껴졌다. 별자리를 더듬으면서 되뇌었던 생각 한 줄기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저 별들처럼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이 나라 이 강산의 평화를 위해 작은 힘을 보태고 있는 나, 그리고 모든 국군 장병들은 이 밤하늘의 별들과 같은 존재들이라는 것. 조국의 평화와 번영의 근간을 떠받치고 있는 우리의 군 생활은 곧 아름다운 반짝임과도 같다는 것.

종착지인 연병장에 복귀하여 한껏 기쁨의 함성을 발할 때, 내 가슴속을 가득 채웠던 그 뿌듯함은 단순히 마지막 훈련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진실로 보람찬 길 위에 서 있다는 큰 자부심. 또한 남은 군 복무기간 동안 내가 감당하여야 할 보직에 최선을 다하리라는 굳센 다짐의 표시이기도 했다.

나의 가족, 나의 이웃, 더 나아가 조국과 민족의 안위를 나의 손으로 우리의 손으로 수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 병역의 의무는 절제된 생활과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난관을 극복하였을 때, 한 사람의 평생을 능히 넉넉하게 채워줄 수 있는 크나큰 보람의 이름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은 1년 9개월 여 간의 군 생활, 때로는 험한 산과도 만날 것이다. 때로는 거센 바람과도 재회할 것이리라. 그때마다 나는 10월 22일, 그 날의 행군을 기억할 것이다. 눈망울 가득 담아두었던 논산의 가슴 벅찬 야경, 그리고 밤하늘을 묵묵히 밝히던 별들이 뿌려주었던 깨달음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다짐하리라.

“나는 국가와 국민에 충성을 다하는 국군의 일원임을 병역의 의무를 완수하는 그 날까지 대한민국 국민으로 숨을 거두는 그 날가지 자랑스럽게 생각하리라!”고.